설렘의 순간이다. 꽃을 내밀며 행복한 순간이길 바랐다. 수년이 지난 그날이 스쳐 지나간다. 아는 동생을 만나러 가는 길, 갑자기 운전대를 돌려 꽃집으로 향했다. 투명한 유리문을 밀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각양각색의 색들로 가게 안은 가득했고 향을 내뿜어내고 있었다. 두리번거리던 순간 구석진 한편에 살짝 수줍은 듯 봉우리를 머금고 있던 꽃 몇 송이를 선택했다. 주인장이 꽃을 더욱 탐스럽게 포장해 주었다. 두 손으로 꽃을 받아 들었다. 코 끝에 대고 숨결을 맡으며 교감해 본다. '참 향기로웠다.' 동생의 웃는 미소를 상상하며 가게 문을 나섰다.
"어머, 언니! 웬 꽃이에요?"
"응 , 오늘 행복한 순간을 선물하는 네 마음."
"세상에! 저, 아줌마 되고서 처음 받아보는 꽃다발이에요."
꽃을 보며 상기된 얼굴로 교감하는 모습과 반응에 나도 덩달아 미소 짓고 있었다. 그날의 기억은 그렇게 메모리 속에 장착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다가가 기분을 전환시키고 순간 속에 존재하며 교감한다는 것, 참 행복한 순간이었다. 한참을 그 자리에 우리는 서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안에 고스란히 꽃의 향기처럼 우리의 마음을 수국의 옅은 푸른색이 물들고 있었다.
6년의 연애를 한 나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지금의 남편에게 꽃을 선물 받았다. 그때는 몰랐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꽃을 사는 행위의 가치를, 사실 매일 반복되는 행위는 소중함을 상실시킨다. 감정이 무디어지고 설렘을 잃게 한다. 그 덕분에 나의 어머니는 꽃을 말리며 현관을 드라이플라워로 가득 장식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었다. 유난히도 꽃을 좋아하던 어머니는 매일 꽃과 교감하며 지금의 사위와 교감하고 있었다. 뒤돌아 생각해 보면 나의 무심함이, 어머니의 행위로 덮어졌던 것 같다.
꽃이라는 대상은 누구에게나 환영을 받는다. 하지만 김춘수 님의 시 <꽃>처럼 누가 바라봐주지 않거나 만져주지 않는다면 의미 없는 존재가 된다. 주변에 수많은 꽃들이 피고 지며 자신만의 삶을 살다가 돌아간다. 반복되는 삶 속 그들은 다른 존재이며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있었다. 바라보는 우리의 눈에는 단지 꽃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누구나 피어나 한 생을 살아간다. 누구나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소임을 충실했을 때 값진 인생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소리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누군가 내미는 손안에 한 세상이 담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