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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소중한 것들

-감사

by Sapiens


<am.5:50>



돌이켜보면 유난히도 바쁜 시간을 보낸 한 해였다. 오롯이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진행하면서 보낸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2023년이었다.


그동안은 그냥 살았던 것 같다. 숙제처럼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의 마디에서 던져지는 미션을 수행하며 짧은 호흡과 긴 호흡을 반복했던 시간이었다.


그러니 소소한 기쁨에 웃을 줄도, 누군가 보내는 따뜻함에 온기를 느낄 줄도 몰랐었다. 까맣게 타버리는 화염 속 나무처럼 온몸에 숯 칠을 한 채, 산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렇게 살았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 위안을 삼았는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으면 내 삶의 정체성이 사라질 것이라고, 부둥켜안고 숯검둥이가 된 채 삶의 올가미를 쓰고 버티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나에게 필요한 소중한 것이 나 자신의 울림을 알아차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내가 늪에서 빠져나올수록 자신의 삶의 뿌리 속 간절한 그 무엇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코로나19로 나에게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 속에 자신을 놓아두게 되었다.


빈 공간 속 누구의 간섭도 없이 홀로 존재함은 나에게 그동안의 호흡 소리와는 사뭇 다른 결의 들숨과 날숨을 쉬게 하는 경험이 조금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까맣게 타버린 육체 속에서 새로운 호흡을 하며 세상의 신선한 공기와 교감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서 있는 환경은 암흑 속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생명은 꿈틀거리고 있었다.


거친 호흡이 조금씩 사라지듯 자연스러운 심호흡 속에 나의 시야는 자신의 모습과 마주할 수 있었다. 초라한 모습을 마주하는 일은 나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과 같았다.

인식을 한다는 것은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그렇게 나는 살아오며 간절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도전하게 되었다. 시절인연을 만난 것처럼 초라한 삶은 서서히 물들듯 아름다운 화양연화 속 나와 마주하고 있었다.


줌에서, 여러 도서관에서, 학교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났다.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나에게 알을 깨고 나오는 경험이 되어주었다. 타 지역을 오가며 스치는 누군가에게서도 전해오는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느낄 수 있다는 건,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고, 바라볼 수 있다는 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에게 사람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때론 누군가로 인해 상처를 받고 가슴이 아리기도 하지만, 그래서 깊은 흔적이 새겨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속에서 아름답고 따뜻한 말 한마디로 그 짙은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만난다.


다양한 사람들 틈에서 나는 사랑과 아픔을 가진 빛이 나는 생명들을 만난다. 그러한 시간이 나에게 주어지고 있었다. 그 찰나적 순간들이 나를 성장시키고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이제까지 살아온 시간 중 올해 2023년은 더욱 잊지 못할 만큼 감사한 해이다. 살아있음에 감사할 수 있는 순간의 연속 속에 머물며 오롯한 나 자신으로 서 있을 수 있었다.


이제 균형된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자신과 주위의 생명과 소통하며 서 있으니 외롭지 않다. 이제 까맣게 타버린 육체 속 나 자신의 생명이 살아 움직이며. 맘껏 유영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의 전환들이 내 삶의 소중한 것들이다.


아파도 아프지 않을 수 있음을, 아문 상처도 울고 있다는 것을, 화려함 속에도 외로운 그늘이 존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 나의 삶 속 사고들이 감사하다. 그 감사함 속에서 나는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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