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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풍광

-관계

by Sapiens

<am.5:50>



하얀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내리고 있다. 보이지 않는 간격을 유지하며 부딪힘이나 성냄이 보이지 않는다. 사뿐히 내려앉으며 포개지는 모습이 고요하다.


인내하는 것일까? 아닌 척 연기하는 것일까? 바라보는 시선은 아름답기만 하다. 누군가 짓밟고 지나가도 아무런 아우성도 들리지 않는다.


마치 연주곡이 흐르는 동안 침묵을 해야 하는 것처럼 그 어떤 잡음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손을 뻗어 받아내어 촉감을 느껴보기도, '후'하고 입김을 불며 날려 보내기도 한다. 그제야 내리는 질서가 무너지고 눈앞의 광경이 허물어진다. 하지만 이내 곧추세우며 원래의 간격을 유지하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하염없이 쏟아진다.


겨울밤 내리는 눈송이들을 바라보다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누군가는 지근거리에서, 누군가는 묵묵히, 또 누군가는 밀착한 채 다가온다. 그러나 나름의 패턴이 있다. 그동안 관계해 온 거리로 서로의 깊이는 다르게 펼쳐진다.


그 관계의 그물망 때문에 얽히고설킨 채 침묵 속에 속앓이를 할 때도 있다. 주객이 전도된 듯 누구를 위해 침묵 속 자신을 두고 있는 것인지 혼동할 때가 있다. 이처럼 살면서 관계를 맺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랑할수록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렇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더 이해받고자 하거나 편법을 쓰길 원한다. 결국 인간의 굴레에 갇혀 건강한 관계 속 질서는 파괴되고 서로 부딪히며 파국을 맞게 된다.


남는 것은 대지 위 쌓인 하얀 눈이 짓밟혀 시커먼 눈으로 변해버리듯, 진흙탕 싸움으로 우리의 마음은 갈기갈기 뜯기고 상처로 남기게 된다.


나는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관계란 속성이 누군가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타인과의 조율과 협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다움이 드러날수록 우리는 모가난 존재로 부각되기도 한다.


있는 그대로, 존재 자체로 인정하고, 인정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바라보는 이도 내보이는 이도 주춤하게 한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이란, 참으로 주관적이다. 누군가에게는 허용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그 선이란 것이 참으로 이기적이다.


우리는 감정의 동물이듯, 수시로 변하는 감정을 좇는 것 또한 변화무쌍하다. 그러다 보면 감정기복이 심한 존재로 낙인 되어 서로 화합되기보다 격리되는 사회 부적응적 존재로 낙인 되기도 한다.


사실 아이러니 하지만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이 선을 넘지 않는 관계인지도 모른다. 그 선이라는 간격이 애매모호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관계 속에 존재하고 있다.


자연 속 존재하는 촘촘한 관계망 속에서 연결이라는 속성 속에 보이지 않는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수없이 내리는 눈송이들의 보이지 않는 질서 속 풍광은 현재 어떻게 맺고 지내야 하는 자신의 존재를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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