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도서관 운영위원회 회의에 참석하였다. 우리 도서관에는 성교육 관련 아동들에게 유해가 되는 책을 퇴출 요청 시 어떻게 할 것인가? 를 나누는 안건이 올라왔다.
물론 출간 당시 출간물 심의를 통과한 책들이었다. 무엇이 문제일까?라는 생각으로 분류된 책들을 펼쳐보았다. 살피며 여러 권을 읽어 내려갔다. 전혀 문제가 되는 부분을 찾을 수 없었다. 다른 위원님들의 입장도 유사했다.
당시 머릿속에서 떠오른 문해력이란 단어가 스치며 지나간다. 저자의 의도와 다르게 책을 읽는 독자들의 해석 능력에 따라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유해하다고 말하기엔 불편한 분류였다.
문해력이란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문맹률이 거의 없는 한국사회에서 문해력은 충분히 적정 수준까지 올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순히 읽고 이해하는 수준을 벗어나 어떻게 해석하고 전달하느냐, 그리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읽고 취합할 수 있는 능력, 가짜뉴스들이 쏟아지는 시대에 진실을 구분할 수 있는 판단력 등 기본 의미를 넘어선 다양한 관점들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옳고 그름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보다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할 수 있는 포용력 또한 필요한 능력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정보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매일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쓰나미처럼 밀려가서는 안 된다. 중심을 잡고 자기만의 해석과 판단력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 중심에 이치라는 진리가 사라지면 안 된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이 아니라 보편적 진리를 좇을 수 있어야 한다.
글을 쓰고 책을 읽는 행위로 우리의 문해력이 채워지며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한 창조적 행위 속에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주체적인 해석과 상황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행위가 수반되어야 삶을 객관적으로 조망하는 시선이 주어진다.
어떻게 자신과 대화하고 있는가?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소통이 중요한 이유다. 본질은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문해력은 삶을 변형시킬 수 있는 힘을 지녔다. 글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인 문해력. 당신의 문해력은 건강하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