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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piens Jan 15. 2024

내 삶의 흉터란 어떤 의미일까

-선물

  

<am.5:50>




제2의 인생이라는 이름, 2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결혼이라는 것을 하였다. 누구의 재촉도 없이 당연한 순리처럼 치러졌다. 지금이라면 굉장히 빠른 시기이지만 그 시절 결혼이라는 것은 남녀가 만나 자연스레 진행하는 거부할 수 없는 하나의 절차처럼 느껴졌다.


결혼과 동시에 회오리처럼 새로운 세상 속에 혼자 던져졌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모든 것이 낯설고 부딪히며 퍼즐을 제대로 맞추어 나가야 했다. 시간은 그냥 나 자신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생명이라는 것을 잉태하고 출산이라는 온몸의 멍에를 짊어지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야 했다. 처음이라서, 어리숙해서, 누구나 그렇게 결혼 속으로 아무 거부감 없이 걸어 들어갔다.


돌이켜보면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이 참 와닿는다. 그 시절 나는 철없는 하염없이 여리고 수줍은 세상물정 모른 풀송이었다. 이제 그 풀송이가 자라 쑥대밭을 거침없이 나아간다. 그동안의 거친 세월이 주는 선물 같다. 호랑이 같은 시댁이라는 불편함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견디어내야 했다. 지금은 한 명도 힘든 육아를 혼자 해내야 하는 시절이었다. 친정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는 이는 행운이었겠지만 나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덕분이었을까? 양쪽 집안의 도움 없이 오롯한 내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며 설계해 왔다.


모진 인간관계가 나를 힘들게 하고 벗어나고 싶어도 참아내야 했던 그 시절을 묵묵히 인내 속에 있다 보니 화병이라는 내면의 상처가 지워지지 않았나 보다. 친정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좀 살만한 시기가 되니 떡하니 나에게 찾아온 과호흡의 공황은 또 하나의 복병처럼 살아온 쓰린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도로변 길모퉁이에 정지해 서 있었다. 한참을.


그때 알았다. 참으면 병이 된다는 사실을. 고약하게도 병은 자신을 향한 것들보다 받아내어 견딘 자에게 새겨지는 주홍글자였다. 착하게 산 죄, 나를 돌보지 않은 죄, 타인의 죄를 다져 묻지 않은 죄 등 모든 것의 원인은 자신이라는 깨달음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멀쩡하게 보이는 내 육체는 삼십 줄기의 마디에서 삐끗거리기 시작했다. 요즘은 유행처럼 발병룰이 많아졌지만, 한의원에서 들은 화병이라는 단어는 삶을 오래 사신 어르신들이 걸리는 것이라는 무지 때문에 외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화병은 내 육체의 어느 구석진 자리에 터를 잡아 집을 짓고 있었나 보다. 너무도 지독해서일까? 지나친 상처들이 내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다. 거친 입에서 내뱉는 소리는 나를 흡수해 버리듯 잠식했고 소리 없는 공포였나 보다.


누구에게나 임계점이 존재한다. 나의 임계치를 넘어선 삶의 소리는 나를 짓밟고 지나다니고 있었나 보다. 내 삶 앞에 펼쳐진 기나긴 철길을 달리다 보니 이제 오십 줄기를 달리고 있다. 이제 여유를 부릴 줄도 알게 되었다. 창밖으로 내리는 비가, 눈이 이듬해 봄이 되면 풍성한 새 잎이 돋아나게 해 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될 때쯤 나의 상처는 단단하게 메꾸어지고 있었다. 우둘투둘하지만 내 삶의 흉터는 내 삶의 무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아픔을 나름의 무늬로 주어진 삶을 엮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처가 있어 새살이 돋아나고 그 흉터로 더욱 단단해짐을 온몸에 난 상처를 대면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공황은 지금도 나와 동행하고 있다. 기억은 희미해지며 희석되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나는 공황을 외면하지 않는다. 함께 걸어가며 마주하며 토닥여준다. 고생했다고, 너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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