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한창이다. 차를 몰고 가거나 동네를 걷다 보면 꽃봉오리들이 톡톡 퍼트리며 세상을 향해 피어나고 있다.
꽃들은 잠시 시간이 흐르면, 피어난 자리에서 분리되고 낙화하며 사라질 것이다. 그 자리는 다시 무언가로 채워진다. 그들도 상실감을 느낄까? 화려하게 태어나 세상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을 때를 연연할까?
모든 것은 한 시절을 보내고 사라진다. 어제 본 꽃은 오늘의 꽃과 다른 꽃이다. 물론 우리도 그러하다. 봄꽃들을 바라보며 우리의 지난날을 돌이켜 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본 사람은 끄달림에 시달리는 시간이 찾아온다. 그 시기가 지나면서 서로 이별의 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동안 아파하고 진정한 이별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원래 혼자라는 사실을 잊은 채 누구도 대신 그 상실감을 치유해 줄 수 없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혼자만의 고통으로 남게 된다.
어떻게 떠나보낼 것인가? 꽃들이 만발한 순간 온갖 에너지를 뿜어내며 기쁨을 주듯, 우리도 곁에 있을 때 최선을 다해 대접하는 방법뿐이다. 봄에 피어난 그들은 상실감에 슬퍼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운명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상실되어야 다시 피어날 시기를 알아차릴 수 있고 또다시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혹한의 겨울을 나고 다시 시간여행을 하며 성장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별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부여잡고 놓아주지 못한다. 부모를 떠나보내든, 자녀들을 독립시키든, 존재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은 크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며 그것은 타인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문제임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상실감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에 대한 가치가 정립되어야 한다.
사실 우리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 어떤 흥미도 느끼지 못하며 지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매 순간은 늘 반복되는 일상이 아니라, 새롭게 펼쳐지는 순간이다. 살아있다는 건 그 매 순간, 깨어있다는 의미이다.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가 존재하는 순간을 충실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비로소 이별의 순간이 다시 찾아올 때 연연하기보다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