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녀는 삶의 마지막 길에 동행하고 있었다. 영정사진을 가슴에 품고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주변의 지시하는 대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그녀의 뿌리와 이별을 하고 있었다.
초여름의 거리는 봄볕처럼 따스했다. 이승에서의 삶을 정리하듯 운구차의 속도는 차분했다. 양지공원으로 가는 내내 그녀의 뇌리 속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눈물은 넘쳐났지만 흘러내리지 않았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아프면 통증을 느끼지 못하듯 무감각한 표정으로 그렇게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있었다.
입관식의 장면에서 철판 위에 누워있던 어머니는 너무도 평온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찰나 그녀는 자신이 그 몸을 통해 이 세상에 왔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는 순간, 돈오(단박에 깨달음)했다. 순간의 깨달음이 머리를 한대 얻어맞듯 어머니의 위대함에 감사함을 느끼고 느꼈다. 내가 잘 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내가 존재할 수 없었음을 명을 다한 육체를 마주해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 순간 이후로 그녀의 삶에 대한 가치관은 달라졌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화두에 대한 물음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라는 말이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또한 더욱 겸손한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함을 알아차리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그녀는 전과 다른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내려놓는다는 의미를 알아차리게 되면서 좀 더 자유로워졌다. 그녀는 돈오점수의 순간들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삶은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양과 색을 지니게 된다. 그녀는 ‘어떠한 관점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의미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그날의 그 순간은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남겨 주신 값진 선물이었다. 그녀는 그제야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손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