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기억이 살아나고 있었다. 초여름의 더위가 덮친 주말 오후이다. 홍대의 진입로를 그와 함께 걷고 있었다. 민소매 검정 티 사이로 보이는 뽀얀 살결이 이십 대의 청춘을 보여주고 있었다. 통이 넓고 긴 빛바랜 청바지 밑으로 하얀 샌들이 보일 듯 말 듯, 통굽 샌들을 신고 있었다. 손과 손을 맞잡고 편안한 걸음으로 진입로를 걷고 있는 남녀의 모습이 오래된 카메라 렌즈 속 필름이 돌아가고 있다.
드리워진 나무 그늘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의 그림자가 생겨난다. 그림자 위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긴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있었다. 무더운 날씨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손을 잡은 서로의 부드러운 손길 위에도 바람이 통과되도록 길이 나 있었다. 헐겁게 잡은 두 손은 오히려 평온했다. 바람의 리듬과 함께 휘젓는 손길이 느린 발걸음과 동행하듯 흔들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날 그와 함께 홍대의 진입로를 걸으며 우리의 이십 대는 지나가고 있었다.
청춘,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스며든다. 그 시절 그 마디쯤 우리가 느끼지 못한 평온함과 아름다움의 필름이 되감기며 보이게 되는 건 무슨 연유일까?
어느덧 오십 중반의 마디를 건너고 있다. 수많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함께 했던 우리. 같은 추억과 기억을 나눠 갖고 있었다. 서로에게 아픔과 애증으로 물들이며 지나온 시절이 얼룩진 채 색 바랜 그림자로 그들의 삶 위에 존재했다.
사랑은 아픔이었다. 아픔이 서로의 마음을 흔들기도 했고 그러다가 맞게 된 폭풍우를 함께 맞서기도 하였다. 그렇게 단련되는 시간이 오히려 그들에게 새로운 믿음과 모양을 지닌 그들만의 사랑으로 다시 물들어 갔다.
둘이 만나 넷이 되어 그들만의 울타리에서 각자의 색을 가진 공동체가 되어갔다. 이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주체적인 존재로 다시 세상을 걸어가고 있다. 오십 대의 삶은 이십 대의 청춘의 삶보다 깊이가 있다. 서로 손을 잡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이 전해진다. 목소리만 들어도 서로의 표정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함께한 시간은 서로에게 온전한 사랑의 의미를 알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