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아지트

-소울 메이트

by Sapiens

나만의 아지트


sapiens



아지트의 어원은 아지트 풍크트(agitpunkt)라는 러시아어로 비합법적 활동가나 혁명가의 은신처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활 속에서 자주 머무르는 곳 또는 즐겨 찾는 곳을 은유적으로 부를 때 많이 사용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즐겨 찾는 공간인 아지트가 있다. 그럼 나만의 아지트는 어디일까? 예전에는 1초도 망설임 없이 도서관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아지트는 바뀌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S Bar'라는 칵테일바가 나만의 아지트였다.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주부들은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서로 시간 맞추기도 어려웠고 저녁시간에 나오는 것은 더더욱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혼자만의 생각을 정리하고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곳인 SBar를 즐겨 찾곤 했었다.


그때를 떠올려보면 생각이 복잡할 때, 그곳에 가면 여성 바텐더가 알아서 내가 좋아하는 왁스의 노래들을 틀어주었고, 블랙러시안이라는 칵테일 한 잔을 마시며 여러 생각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곤 했었다. 그 공간은 나의 힐링 장소이기도 했던 것 같다. 이젠 없어져서 추억의 장소가 되었지만 말이다.


아이들이 커서 중고등 시절에는 아이들을 픽업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장시간 차 안이라는 공간이 나의 아지트 역할을 해주기도 했었다. 그 안에서 아메리카노 한잔과 책 한 권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크고 대학을 가고 나니 즐겨 찾는 투*카페의 어느 테이블이 나만의 공간이 되어주었다. 하루 종일 그곳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는 혼자만의 시간이 굉장한 힐링 장소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코로나 19로 인해 생활의 패턴이 바뀌면서 요즘은 주방에 있는 식탁이 나의 아지트이다. 엔틱으로 된 직사각형의 책상 위에는 요즘 읽는 책들과 노트북 그리고 그림도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왼쪽 의자 위에는 내가 좋아하는 카키색 쿠션을 올려 두고는 책을 읽을 때마다 무릎 위에 세워놓고 사용한다. 그리고 장시간 앉아 다리가 불편할 때는 앞 의자 위에 다리를 올려놓을 수 있도록 의자를 앞쪽으로 최대한 가까이 배치해 놓는다. 그리고 부엌이라는 공간에는 물과 음료가 준비되어 있어 필요한 물건들의 가장 중심점에 있어서 나에게는 최적의 장소가 되어주고 있다.


아이들이 있을 때는 밥을 함께 먹는 장소가 되어주던 공간이 이제는 나만을 위한 공간으로 완벽하게 변신되어 존재하고 있다. 나는 이 공간에서 많은 일들을 한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식탁 위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사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주방이라는 공간에 놓인 식탁은 질리지도, 서로 다투는 일도 없다. 그리고 지저분하게 사물들이 놓여 있어도 잔소리하는 경우가 없다. 참 듬직한 친구가 되어준다. 어느 누가 불평불만 없이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해 줄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나의 많은 시간들을 함께 하며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공간 속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글이라는 매체가 나의 변화되고 재생성되는 새로운 생각들을 정리해주고 있다. 그러한 부엌에 자리 잡고 있는 식탁은 내가 즐겨 찾고 머무는 공간이 되어주고 있다. 참 감사한 소울메이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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