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색

-삶의 이치

by Sapiens


새벽 공기가 차다.

아직 여름의 서랍을 닫아두지 않았다. 낮에는 더운 기운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창문을 닫아둔 채, 긴 옷을 입기엔 아직 이른 계절이다.


새벽 한 시가 훌쩍 지나고 있다.

수아는 우두커니 서서 낮에 그리던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고요한 정적 속에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오토바이 소리가 소음으로 다가와 그림 감상을 방해하곤 '쌩'하니 달아나 버린다.


고정된 시선과 감각을 깨트리곤 수아의 방 안엔 다시 정적이 흐른다. 수아의 손에는 아직 붓이 들려있었다.


아직 향기가 남아 있다. 지나간 오토바이의 바퀴 자국이 남겨진 것처럼, 각기 다른 꽃들의 얼굴에서 향기가 베어난다.

한 참을 바라보며 깨진 정적 사이로 대화를 시도한다.


순간, 수아는 너희도 나처럼 결이 다른 가면을 쓰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하나인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너희들이 보인다. 장미와 백합꽃들이 각양각색의 피부로 자신만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 꽃이 예쁘다고 말할 수가 없다. 모두 색이 다르듯 모양과 크기도 미세하게 다르다. 너희도 다르고 나도 다르다.


수아는 순간, 우리는 서로 닮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각기 자기만의 색을 가지고 표출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도로 위 새겨진 오토바이의 바퀴 모양과 굉음소리가 미세하게 다르듯,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하나도 같은 것이 없구나...

그 안에서 풍겨 나는 향 또한 다를 수밖에 없으며, 각자가 쫓고 있는 삶의 조각들도 다른 모양을 하고 있구나...


새벽 인적이 드문 도로 위를 휘젓고 다니는 오토바이가 상념의 길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이처럼 살다 보면, 살아가다 보면... 그 무엇이, 또는 그 누군가가 다가와 속삭일 때가 있다.


그 속삭임을 무심코 보내지 말고 붙잡을 수 있다면 그것은 결코 잡음이 아님을 알게 된다.


너무도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살아가다 보니, 잠시 머물다 가는 것들과 작별한 지가 오래다. 가끔은 머뭇거리거나 서성거릴 수 있는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과 조우하는 시간은 자연을 살찌우는 가을과도 닮아있다.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나니, 흐르는 밤길 위 더욱 깊은 정적이 흐른다. 그 정적 속에서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귓가를 가득 채운다.


이처럼 새벽녘 수아는 '하나가 가고 나면 또 다른 하나가 다가온다'는 이치를 다시 만난다. 그 만남 속 느껴지는 색깔들로 캠퍼스를 채우고, 또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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