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나밖의 또 다른 나
악마와의 동행
sapiens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정인이의 학대 사망 방송을 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 아이의 엄마로서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방송을 보는 내내 ‘세상에 악마가 존재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약자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필요해 의해 물질처럼 거래하고 소유하는 행위들에 대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누구나 수많은 가면들을 쓰고 생활하고 있다. 필요에 의해서 건 의도적이건 우리가 사용하는 가면들은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수단 의미가 되기도 하다. 하지만 거기엔 도덕과 이성이라는 판단이 존재할 때 나름의 의미가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방송을 보면서 인간의 이성이 마비되고, 도덕이 결여되었을 때 사람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가를 냉혹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양부모들의 모습은 악마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일까? 자신의 아이가 있음에도 왜 입양까지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하나의 생명이 장난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의 원인은 어디서 온 것일까?
자신의 행위에 대한 죄책감보다 타인들의 시선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이들의 사고를 이해할 수가 없다.
방송을 보는 내내 불편했다. 메스껍고 눈물이 나서 차마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도저히 인간이 행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는 생각을 내뱉으며 놀라움에 소름이 돋았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인데 이 아이들의 미래가 우리 어른들로 인해 어두운 미래가 펼쳐질까 두렵기까지 하다. 그러한 점에서 이것은 단순한 한 가정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무관심, 아동학대의 무지, 약자들에 대한 보호정책의 미흡함 등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약자들의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미성숙한 어른들로 인해 아이들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더 나아가 국가가 보호해야 할 우리의 미래인 것이다.
'정인아 미안해'라는 캠페인으로 우리 양심의 가책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좀 더 구체적이고 확실한 정책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존재이며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불평등과 추악한 사회악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가장 기본적인 인간다운 행위를 포기할 때 우리는 스스로 인간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마치 마약에 중독돼 듯 점점 반이성을 쫓고 비도덕적인 행위에 익숙해지며 악마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악마를 걸러내고 질서를 잡는 기구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인간이 악마로 변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의 원인이 탐욕이든 명예든, 진실의 가치를 보지 못하는 눈을 가질 때 우리는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어도 세상의 진실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왜곡된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고, 옳고 그름의 판단력을 잃게 되어 자신이 원하는 세상만을 쫓게 되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도덕성까지 잃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입양아인 정인이가 세상에 태어나 살다 간 그 짧은 시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우리는 남의 고통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모든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타인은 ‘나 밖의 또 다른 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때 우린 타인과 손잡고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