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

-신이 준 선물

by Sapiens



밤 11시를 훌쩍 넘기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사방이 탁 막혀있는 공간 속에 놓여 있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숨을 쉬기 힘들다. 마치 어항 속에서 건져 내동댕이 쳐진 물고기가 바닥에서 파닥파닥 거리며 몸부림치듯이 ‘헉헉’ 거리며 숨을 내쉬어 보지만 숨을 쉴 수가 없다. 길어야 몇 분간의 ‘혼돈의 시간’이 또다시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나에겐 예고 없이 불청객이 찾아온다.


숨을 쉬기 위해 본능적으로 침대 위를 박차고 내려왔고, 전창이 있는 베란다로 달려 나가 두 손으로 창문을 열어젖혔다. 바깥 신선한 공기를 마주해 숨을 쉬어보려고 들숨과 날숨을 반복해 보지만 과호흡을 조절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다 메스꺼움과 함께 뭔가가 올라온다. 헛구역질이다. 헛구역질을 하다 보면 명치에 통증이 수반된다. 그러면 저절로 오른쪽 손바닥을 가슴에 대고 문지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한다. 다시 메스꺼워서 헛구역질을 하다 보면 최고혈압이 200 가까이 오르고 몸은 탈진해버린다. 잔잔한 물결들의 파동처럼 뇌에서는 잔 통증이 수반된다. 탈진해서 아무런 기력도 없게 되면 아이러니하게도 서서히 시야에 사물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잔잔한 두통으로 한껏 무거워진 머리를 두 손으로 지그시 누른 상태로 지압을 한다. 남편이 옆에서 모든 상황을 묵묵히 지켜보면서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기다렸다는 듯 남편의 두 손에서 건네는 찬물 한 컵을 천천히 들이킨다. 그리곤 그의 부축을 받으며 서서히 주저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한다. 세면대 앞에서 찬물을 틀어 얼굴을 훔친다. 힘겹게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본다. 마치 태풍이 할퀴고 간 처참한 거리의 모습처럼 흩틀어진 한 인간이 서 있다. 얼굴은 빨갛게 부어 올라 상기되어 있었으며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맺힌 눈물 망울들이 서로 얽혀서 더 이상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다.


공황상태에서 빠져나왔다는 안도감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처음 발병했을 때와는 달리 매번 공황이 반복될수록 공포감은 무디어진다. 과호흡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죽음과 마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두려움은 없다.


다시 가슴을 움츠리며 침대로 가 앉는다. 서서히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옴을 느낀다. 심호흡을 천천히 하면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기까지 20 여분의 시간이 지나간다. 그렇게 나는 공황과 살고 있다.


문득문득 찾아오는 나의 불청객인 그는 나와 동행을 한지 수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처방 없이 지냈지만 6개월 전부터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면서 약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은 태풍처럼 휘몰아 치곤 한다.


수년 전 뇌출혈로 인한 친정어머니의 4년간의 투병생활, 그리고 어머니와의 장례식을 치르고 짙은 이별의 순간을 보내면서 나는 삶을 바라보는 시각들이 많이 변화되어갔다. 그러한 사고의 전환을 할 수 있었던 아픈 시간들 덕분으로 훗날 남편의 암 진단과 함께 찾아온 9시간의 수술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어주기도 했다. 삶은 고통이라는 말처럼 하나의 아픔 뒤엔 또 다른 아픔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 이후 쓰나미와 같았던 아들의 뇌 물혹 진단, 너무나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또다시 무너지는 청천벽력의 순간을 맛보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의 강도가 더욱 강해질수록 다시 한번 나를 굳세게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더 튼튼한 심지가 되어주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이러한 힘든 상황들을 연이어 마주하다 보니 혼돈의 시간에서 빠져나오는 데까지 그리 길지 않은 시간들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무너지고 또 무너지는 경험을 통해 나에게 온 ‘깨달음’이라는 소중한 수확들은 나를 단련해주기에 충분했고 혼란의 회오리 속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근력을 갖추게 해 주었다.


처음 공황이 나에게 왔을 때는 오히려 이러한 힘든 일들에서 벗어나 정신적인 여유가 생길 때였다. 아이들도 대학에 들어가서 타지로 나가고, 집 장만으로 대출한 대출금도 모두 갚을 수 있어서 아무 근심 없이 살만한 시기, 경제적 여유와 생활의 여유까지 주여진 내 생애 가장 편안한 시기였다. 그래서 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실 힘든 시기가 지나고 불현듯 나에게 찾아온 공황 때문에 나는 더 이해할 수가 없었으며 공황, 그를 원망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또다시 새로운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혼돈의 순간들이 되풀이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불청객, 그는 나에게 갑자기 온 것이 아니라는 ‘생각의 전환’을 다시 한 번하게 되었다. 내 마음을 돌보지 않아서, 자신을 잘 살펴보라고 나에게 보내는 ‘신이 보내주시는 신호’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사실, 문제의 원인은 주변 상황과 타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는 것, 그래서 나의 사고는 더욱 성숙되어 변화되어갔으며, 조금씩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면서 나의 세상은 다르게 펼쳐졌다. 주변 모든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해 주었고 사소한 것들에 항상 감사하게 되었다. 이러한 나의 변화는 나에게 삶의 기적을 가져다준다.

신은 누군가에게 ‘깨달음’이라는 선물을 줄 때 고통과 함께 주신다는 사실, 세상에는 정말 공짜가 없다. 깨달음의 지혜를 얻기 위해선 버거운 고통을 이겨내야 하니 말이다. 타인을 바꿀 수는 없지만 나 자신은 변화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항상 또 하루를 선물 받을 수 있어서 감사기도를 한다. 그럼 신기하게도 행복한 하루가 펼쳐진다.

삶은 고통과 행복이 반복되는 사이클이다. 이 원리를 알고 난 이후부터 힘들고 버거움을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찾아와 준 이유를 묻다 보면 나의 사고의 틀은 더욱 깊어진다. 공황, 이제 원망 없이 너와 마주하고 있다. 그 마주함은 오늘도 ‘고통 속에서’ 나를 변화시킨다. 여전히 공황은 나의 명치 속에서 살고 있다. 그는 불청객이 아니라 신이 내게 준 선물이다.


-2019. 10. 19. 새벽 2시. 공황이 지나간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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