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친구
슬픔이 찾아올 때는 당신은 무엇을 하나요?
감정이 뇌를 지배하고 육체의 에너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엄청난 방해로 일상을 마비시켜버리지요. 순간에 스치는 슬픔이라는 감정에 휘둘리며 어떠한 해결책도 없을 때 감정의 지배가 일어나기 때문에 멍 때리듯, 그 순간에 꼼짝하지 못하고 서 있지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으니까요...
인간의 능력이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에는 아주 작은 거인인지 모릅니다. 어느 누구도 그 거인의 힘에 대항할 수 없지요. 가끔은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아보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치유책은 되지 못함을 느낍니다. 누구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거리기 때문이지요. 그 허우적 거림 속에서도 중용을 지킬 수 있을까요? 그런 분이 있다면 우리는 ‘성자’라고 부르지요. 성자라고 한다면 허우적거리지도 않고 고요한 바다처럼 평상심을 유지하겠지요.
우리는 세상이라는 넓은 바다에서 수많은 파도와 싸우며 망망대해를 헤엄치며 살아내야 하는 미미한 존재이지요. 어찌 그 삶 속에 평온한 일상만 존재할 수 있을까요? 태풍에 휘몰아치기도 하고, 땡볕 속에 헐떡거리기도 하며 그러다가도 잠시 찾아든 여름 휴양지와도 같은 잔잔한 파도 위에서 서핑을 즐길 수도 있지요. 하지만 우리는 서핑을 즐기는 환상만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지요. 태풍은 주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음을 차치해버리지요. 그래서 어리석은 중생이라는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슬픔이 찾아올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깊은 밤 내면과 이야기를 나누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면이 약한 인간은 금세 ‘실의’라는 감정에 빠져버리곤 슬픔의 원인을 타인에게서 찾아 헤맵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참 나약한 존재이면서도 이해하기 힘든 존재입니다.
그렇다고 내면의 뿌리를 키우는 일에 그렇게 기운을 쓰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우린 허상을 쫓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허상이 만든 세상을 쫓으며 허상의 덫에 걸려 넘어지는 순간에도 인지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뇌관 속에 존재하고 있지요.
인간의 뇌관이 터지면 말도 어눌해지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지요. 하지만 자신은 항상 예외일 거라 생각하지요. 여기에 인간 감정의 함정이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을 조종할 수 있다는 생각의 함정 말입니다. 결국 인간은 나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임에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죽어있는 생물이 아픔을 느낄 수 있을까요? 슬픔 또한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러 측면에서 보면 이런 슬픔이란 감정이 찾아왔다는 것은 마음이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자아를 지켜내고 보호하려는 본능이 발동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에 소홀해선 안됩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며, 다독여주며 그 이유를 알아차리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마음속에 슬픔이 찾아온 이들은 어쩌면 선택받은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소중히 여기고 대해준다면 우리는 좀 더 행복한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어느 순간, 찾아온 감정들을 우리는 소중한 친구를 대하듯 맞이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