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당하다

-멸하다

by Sapiens

나는 오늘 살해되었다. 늦은 시간 조용히 벽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어디선가 문을 여는 소리에 눈을 떴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갑자기 하얀색 천으로 나를 덮치더니 나의 몸은 압착되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치며 저항할수록 호흡의 힘은 점점 사라져 갔다. 그렇게 나는 저세상으로 갔다.


그 순간 나는 내 육체에서 빠져나와 처참하게 죽은 나의 모습과 마주할 수 있었다. 내 육체 앞에서 씩씩거리며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하고 있는 한 여성이 보인다. 한참을 검색하더니 나의 이름을 알아냈다. 나의 이름은 서양 좀 벌레였다. 사실 나도 내 이름을 죽어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으므로.


집주인은 누군가와 통화를 계속하면서 어떻게 하냐? 며 넋두리를 쏟아내고 있다. 나는 이미 죽었는데 주인은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그렇게 해로운 존재인가?'


사실 난 책이나 옷을 좋아한다. 그곳은 내가 생활하기엔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서적 냄새도 좋고 의류의 습기도 나의 기분을 좋게 한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난 잠을 잤을 뿐이고, 주인의 눈에 띄었다는 사실 말고는.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에도 집주인은 계속 ‘오늘 잠은 다 잤다’며 ‘어떻게 하냐’며 난리가 장난이 아니다. 살충제를 사체 위, 벽지에 뿌리더니 그다음에는 이불을 돌돌 말아 밖으로 가지고 나가 털기 시작한다. 그리곤 다시 방으로 들어와서는 돌돌이 테이프로 침대 위를 열 번도 더 왔다 갔다 하면서 온갖 짜증을 퍼부어댄다. 어떻게 자기 방에 들어왔는지 의심의 추적을 하면서 말이다. 내가 그렇게 나쁜 존재인지 그 모습을 보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집주인은 내일 아침 다이소에 가서 나를 없애는 좀약을 사 와야겠다고 말을 한다. 그때 알았다. 나를 죽이는 약도 있다는 것을.


집주인이 나를 처음 보았을 때 엄청난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징그럽고 무섭다고 했던 말도 기억난다. 자기는 벌레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자기 방에 있는 모든 벌레를 죽이기 전에는 잠을 잘 수 없다며 누군가와 계속 전화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계속 돌돌이를 손에서 놓지 않고 이불 위를 돌리고 있다. 나는 벽 위에 있었는데 말이다.


'사람들은 벌레를 싫어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미치니 내가 참 쓸모없게 느껴졌다. 우리 같은 좀 벌레는 전분이 함유된 풀이나 벽지에 묻혀 있는 물질을 먹고 살기 때문에 서적이나 직물에 피해를 주기는 한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우리를 끔찍하게 여길 줄이야. 오히려 내가 더 놀랬다.


사실 인간들도 다른 동·식물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가? 잔인하게 죽이기도 하면서 왜 우리를 그렇게 무서워하지? 참 이상하다. 자신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나? 자신들은 칼로 배기고 하고, 잡아먹거나 때리며 학대하기도 하면서 힘없는 우리를 무서워하는 것일까? 내가 죽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사실을 알게 된 나의 생이 마감된 날이다.


'아, 이렇게도 죽는구나! 인생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구나! 내일이면 강력한 살충제를 사 와서 우리의 가족과 친구들을 박멸한다고 했는데 걱정이다. 내가 죽었으니 알려줄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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