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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 운명

-먼지

by Sapiens


나는 책상 위에 앉아 있다. 노트북을 켜고 시야는 창문으로 드리우는 햇살로 향해 눈이 부시다. 한겨울이지만 오랜만에 나온 햇살이 참 좋다. 그런데 노트북과 창문 사이에 놓여 있는 선풍기가 자꾸 시선 속에 머문다.


작년 여름부터 계속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너는 이제껏 작동만 하다 잠시 쉬고 있구나! 자세히 바라보니 엉기성기 얽힌 먼지들로 선풍기 날개 위며 뚜껑 살 사이사이를 메우고 있다.


지난해 여름 열심히 돌아가던 너는 지금껏 그 누구의 관심도 없이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게으른 주인도 문제지만 너를 바라보며 나 자신을 보게 된다. 나의 마음에 앉아 있는 수많은 먼지를 보듯 너와 만난다.


누구도 자신의 먼지를 스스로 청소하고 정리하지 못하는 것이구나! 누군가의 도움으로, 배려로, 사랑으로 깨끗하게 씻겨지고 정돈되는 것이구나!


혼자 잘났다고 세상 속에 존재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넘어지면 누군가의 도움으로 일으켜 세워주기도, 부추겨주기도 하는 것이다.


내 앞에서 계속 나를 주시하고 있던 너도 나에게 씻겨달라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너의 몸 위에 덕지덕지 앉아서 한 몸이 되어가고 있는 먼지들은 공간 속에 존재하던 우리들의 생각의 파편들 인지도 모른다. 는 생각을 해본다.


함께 매일 생활하던 너와의 추억들이, 더위로 짜증이 나던 날 배출되던 땀들이 얽히고설키며 붙어있다. 먼지라는 이름으로 이제 씻겨져 사라질 운명들을 마지막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해마다 태어나고 사라지는, 반복되는 너희들의 삶도 우리들의 삶처럼 매일 똑같은 주어지는 일상이 아님을.


먼지, 사라져야 할 존재일지도 모르지만 너는 우리와 한 공간 속에서 함께 공존해야 하는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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