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막차

인연도 계기가 멍석이 돼야 이어진다

by 연오랑

간혹 영화나 연예 소설을 보면 막차를 놓쳐 인연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26년 전의 일이다. 대구에서 대전으로 승진 발령을 받아 며칠 되지 않은 때였다. 대부분 관리자가 40,50대인 회사에 28살 총각 매니저가 부임하자 회사 내 여기저기서 수근거렸다. 회사 사장과 친인척이라도 되나? 요즘 말로 금수저를 받고 태어났나?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며칠이 지나자 회사 상무님이 전체 미팅 시간에 나를 불러냈다. 상무님 귀에도 여기저기서 이상한 소문이 돌자 급기야 본인이 직접 그간의 성과와 초특급으로 승진한 비결을 이야기해주라고 했다. 이는 다분히 나를 자랑하라고 내준 시간이 아니라 젊은 신입사원과 타성에 젖은 중년의 사원들에게 자극을 주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30여 분간의 강의에 여기저기서 쑥떡 거리 소리가 들렸다. 한마디로 독한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 뒤로 여사원들은 나를 어렵게 여겼고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냉혈인간 취급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사무적인 일 외에 여직원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면 옆 건물에서 근무하는 여직원들이 1,2명씩 회사 휴게실로 원정 휴식(?)을 하러 들리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소문이 옆 건물 회사들에 까지 퍼진 모양이었다.

미국 계회 사라 연봉이 장난이 아니라는 이야기와 함께 총각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듯했다.

어느 여름날 주말이었다. 회사에 잠시 들려 잔무를 처리하고 나서려는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직원이 있었다.

“ 토요일 날 어쩐 일이에요?”

그 여직원도 월말 결산 때문에 밀린 일을 처리하기 위해 잠시 나왔다고 했다. 회사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 그 여직원이 생각났다. 혹시나 싶어 바나나 유유와 빵 몇 개를 사 들렀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여직원은 장부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 잠시 이거라도 먹고 일해요”라고 하자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서류한 장을 들고 왔다.

“단장님 이번 달에도 단장님 사업단이 전국 1위를 했네요. 축하드려요”라며 마주 앉았다.

맞은편에 앉은 여직원의 얼굴을 그제야 찬찬히 볼 수 있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당찬 얼굴이었다.

관리자이니 여직원 인사기록카드는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위치였기에 그 순간 그 여직원의 이력서가 생각났다.. 얼핏 떠오르는 이력이 있었다.

00 국회의원 보좌관, 000라는 이력이었다. 순간 나의 버리지 못하는 호기심이 작동했다.

“내일 휴일인데 뭐 해요?”라는 질문이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왔다. 사실 총각이고 친구도 없는 낯선 대전 땅에서 휴일이면 할 일이 별로 없어 고민거리 중에 하나였다.

“별로 특별한 일이 없는데 왜요”하는 소리가 떨어지지 말자

난 “대전에는 어디 좋은 산이 없어요?”라고 물었다.

“저도 산을 좋아하는데 지금쯤은 속리산 계곡이 좋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매사에 자신감이 충만해 있던 때라 바로 말을 받았다

“ 내일 그러면 날 속리산으로 좀 안내해 줄래요? 지리를 몰라서...”

다음날 그녀와 나는 속리산행 버스를 탔다. 이상한 점은 회사에서도 부서가 달라 가까이 지낸 적도 없고 따로 만난 적이 없는데도 수년 전부터 알고 지낸 듯 불편함이 없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성격이 어떤지도 모두 간파하고 있었고 심지어 그 정도는 회사 여직원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다고도 했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으나 정작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3시간여를 달려 속리산에 도착했다. 법주사 아래 상가에서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고 들린 법주사에서 그녀는 열심히 무엇인가를 기도 했다.

“뭘 그리 열심히 기도 했어요” 그녀는 비밀이라고 만 했다.

넓은 절을 둘러보고 나서려는데 갑자기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도구라고는 내가 입고 있던 점퍼가 전부였다.

우리는 한 손은 머리 위에 둘러쓴 점퍼를 잡고 한 손은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앞만 보며 뛰었다. 함께 뛰면서 발도 맞췄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여자의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그리고 가슴도 콩닥콩닥 뛰었다.

더 큰 문제는 주차장에 도착하자 막차가 끊겨 있었다는 점이다. 여름철이라 해가 길다는 점을 간과하고 막차시간을 확인해 놓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잠시 후 해는 서녘으로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라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다.

점심을 먹던 식당으로 다시 들어갔다. 밥이 넘어가는 둥 마는 둥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주인아주머니가 다가왔다.

“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가, 2층에 깨끗한 방아 하나 남아있으니...”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일대 상가는 모두 여관과 겸하고 있는 곳이 많았다.

2층 안쪽 방에 감금된(?) 우리는 TV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올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서로 경계(?)하다 새벽녘에서야 언제 잠들었는지 모른 체 토끼잠을 잤다.

더 큰 문제는 다음날 아침에 기다리고 있었다. 첫차를 탄다 하더라도 8시 반 출근 시간에는 도저히 맞출 수가 없었다. 겨우 10시께 도착한 회사에는 따가운 눈 치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고(?)를 치고 온 사람 취급하는 눈초리가 여기저기서 기다리고 있었고 그녀의 집에서도 난리가 난 상황이 됐다. 처녀 총각이 함께 밤을 보낸 사실이 들통이 났는데 누가 아무 일 없었다는 것을 믿어 줄 것이며 어이없이 일어난 우연이라는 사실을 믿어 주겠는가 말이다.

급기야 상무님도 “남자가 책임을 져야지..”라며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그 뒤 우리는 그날의 일로 말미암아 떠밀리 듯 본격적인 데이트를 시작했고 지금은 옆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사이가 됐다.

내게 있어 그 속리산 막차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또 집사람이 법주사에서 하던 기도는 무엇이었을까?

오늘로 결혼 30주년을 맞았다.

오늘 저녁에는 그 추억을 떠 올리며 실컷 웃어 볼 참이다.

그리고 아직도 ‘진행 중’인 의문들도 하나하나 풀어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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