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숲이야기(1)숲은 제2의 종합 병원
깊은 병 치료는 종합병원으로 가야죠?
오늘도 예외 없이 4시간 동안 투석치료를 받았다. 벌써 7년째의 일이다. 투석기가 돌아가는 동안 침대에 누워 주위를 살펴보면 대부분 일흔을 넘긴 할머니 할아버지 환자가 많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30,40대 젊은 환자들도 자주 눈에 띈다. 의사들 말로는 서구화된 식생활로 고혈압, 당뇨병 환자가 늘고 약물 오남용이 많아 신부전 말기 진단을 받는 젊은이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7년 전, 쉰 살 생일을 며칠 남기지 않은 때였다. 전날 저녁 직원들과 회식을 하느라 평소보다 조금 늦게 잠자리에 들긴 했으나 아침에 일어나기가 이렇게 힘든 것은 처음이었다. 겨우 일어나 세면장으로 들어가 거울을 쳐다보는 순간 낯선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 짐짓 놀랐다.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눈 주위의 붓기는 평소와는 다르게 눈이 절반가량은 감겨 있을 정도였다. 붓기는 점심때가 돼서도 상당 부분 남아 있을 정도로 심했다. 평소 약간의 당뇨증상이 있어 약은 먹고 있었지만 두어 달 전에 혈액검사 등 몇 가지 정기검사에서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은 터라 특별한 의심을 할 만한 구석이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며칠 후 또 전과 같은 증상이 아침에 나타났다. 주위에서도 몸에 이상이 생긴 모양이라며 병원에 가볼 것을 권했다. 회사가 쉬는 금요일, 평소 당뇨관리를 위해 다니던 내과병원을 찾았다.
“국장님, 큰 병원으로 빨리 한번 가보세요. 크리아틴닌 수치가 지난번 검사 때보다 훨씬 높게 나왔으니 오늘이라도 곧바로 종합병원으로 가 보세요. 아마도 콩팥에 이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워낙에 단호하게 말을 하는 지라 무시를 할 수 없었다.
곧바로 달려간 종합병원에서의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콩팥의 기능이 15% 정도밖에 남지 않아 곧바로 투석을 시작해야 한다며 의사는 당장 입원할 것을 권했다. 다른 말들은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당장 투석을 해야 한다는 말에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다 내가 알고 있던, 투석을 받던 주변 사람들은 지금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친구 아버님도 투석을 받다 3년 전에 돌아가셨고 친척 아주머니도 2년 동안이나 투석을 받다가 결국은 돌아가셨다. 투석은 곧 죽음이라는 등식이 뇌리에 자리 잡은 나로서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곧바로 입원을 하고 다음날 목 주위 혈관을 임시로 뚫어 투석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1주일에 3번, 한번 투석에 4시간씩 진행되는 투석이 7년째 계속되고 있다.
투석환자의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주일에 3번씩 한번 투석에 4시간씩 꼬박 침대에 누워 투석을 받아야 한다. 투석을 할 정도의 몸 상태가 되면 여기저기 이상도 생긴다. 하루 투석을 받으면 다음날에야 겨우 약간의 컨디션을 회복하게 된다. 이런 생활이 일 년 내내 계속돼야 연명할 수 있다. 당연히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곤란한 것은 물론 여행이나 친척집 방문도 마음 놓고 할 수가 없다.
혹여 3,4일씩 걸리는 볼일이 있을 때도 인근에 투석을 시행하는 병원이 있는지부터 알아보고 예약을 하고서야 움직일 수 있다. 투석환자들은 종종 이런 치료기간과 환경, 고통 때문에 ‘암환자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질병에 걸린 환자들은 육체적으로 병이 생겼으니 참고 견디면서 1,2달 치료를 받으면 되지만 투석환자들은 기약 없는 장기간의 투병생활로 정신적으로 피폐해 질대로 피폐해져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 된다.
투석환자들이 견디기 어려운 일 중 하나는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주는 경제적, 정신적인 부담과 고통이다. 이는 투병생활을 어렵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투석을 시작하는 순간 회사일은 그만둬야 했고 일이라고는 투석 다음날 정신이 들 때 책상 앞에서 하는 약간의 일이 전부였다. 더구나 쉰을 갓 넘겨 투석을 시작할 즈음에는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가정에서 경제적으로 책임져야 할 부분이 가장 많은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경제활동은커녕, 치료비와 교통비마저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게 된 현실은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 큰 고통아 아닐 수 없었다.
이런 투석을 받는 기간이 늘어나자 자연히 장기간 치료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자괴감, 또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투석을 받기 시작한 지 2년쯤 되던 때였다. 어느 날 우연히 집사람이 3년여 전부터 시작했던 숲해설 현장에 동행하는 기회가 생겼다. 환자 옆에 오래 머물면 덩달아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 하루 몇 시간이라도 자유를 주자는 그런 심산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집사람도 흥미를 있어하는 것은 물론 주변 사람들로부터도 실력을 인정받는 듯했다.
그날도 오전 10시쯤부터 시작된 집사람의 숲해설은 오후 4시경에야 끝이 난다고 해 나는 주변 숲을 산책해 보기로 했다. 그동안 숲을 돌아볼 기회도 시간도, 정확히 말하면 관심도 없었지만 숲 속으로 들어서는 순간 미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숲에는 지금까지 맡아본 적이 없는 향기와 냄새가 있었고, 주변 온도보다 2,3도는 낮은 시원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더구나 주변에서 들리는 각종 새소리와 계곡의 물소리는 덤으로 마음을 더 평안하게 하는 것 같았다.
두어 시간 숲 산책을 하고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향상 달고 살던 편두통이 어느새 슬그머니 사라진 것을 느끼며 내심 신기하다고 여겼다.
그날 이후 나는 틈만 나면 집사람을 따라나서거나 가까운 숲을 찾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게 됐다. 아니 시간만 되면 나도 모르게 발길이 숲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깜짝 놀라 곤 했다.
숲에 다니면서 처음 느낀 감정이지만 숲은 정말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듯하다. 특히 우울증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고민이 많은 사람에게는 딱이다.
매번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숲은 사람들의 모든 고민을 묵묵히 다 들어준다. 때로는 낙엽을 떨구며 같이 슬퍼해주고 또 때로는 쭉쭉 뻗은 모습으로 막혔던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 준다.
그뿐인가 가끔은 함께 살고 있는 청설모나 다람쥐, 새들을 보내 함께 놀아주며 즐거움을 준다.
사람이 고민이 많을 때 묵묵히 들어주는 사람만 있으면 자살률이 뚝 떨어진다는 상담전문가들의 말을 생각하면 숲은 누구에게나 상담사가 되고 무슨 말이던 들어주는 최고의 카운슬러이다. 그것도 무료로 말이다.
며칠 전, 투석을 받기 시작한 지 만 6년째를 맞아 주치의 선생님께 감사의 꽃다발을 전달했다. 암환자에게 5년 생존율이 중요하듯 내게 투석 6년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6년이라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내가 다니는 종합병원 투석실 환자 150여 명 중 내 몸 상태가 가장 좋다 라는 점이 더 감사함을 느끼게 했다.
주변 사람이 비결을 묻는 질문에 나는 내 몸 상태를 유지하는데 일등공신은 ‘숲’이라는 점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얼마 전 오랜 치료 기간 동안 친해진 병원의 행정책임자와 대화를 나누며 숲 나들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내 몸 상태가 좋게 유지되고 있는 비결과 내가 겪은 숲 나들이의 효과를 설명하고 병원 차원에서도 장기 입원환자나 보호자, 그리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부서에 근무를 하고 있는 의료진과 직원들에 대해서도 숲 치유를 겸한 숲 나들이를 권했다 그분 또한 내가 건네준 숲 치유에 관한 책을 읽고서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는 대답을 해 왔다.
투석치료에 힘을 보태주는 일도 생기고 있다. 바로 뇌사자 장기기증 신청을 해 놓은 지 다음 달이면 만 5년이 돼, 순서가 다가오는 희망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투석을 처음 시작하자마자 등록을 했으면 이미 기증을 받을 순서가 다가왔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몸 상태가 좋다는 사실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요즘은 가끔씩 장기이식 수술 이후의 일들을 생각해 보는 여유도 생겼다. 그때마다 나는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피씩 웃는다.
몇 년 사이 나는 장기이식 수술 후 건강을 되찾으면 하고 싶은 일로 당연히 숲 교육과 치유를 꼽는다.
그래서 결론 내린 일이 집사람이 하고 있는 산림교육 일을 적극 돕거나 내 취미와 특기를 살리는 일들을 해 보고 싶다는 희망을 갖는다.
특히 숲과 관련된 소설과 시 등 문학작품을 사람 사는 일과 견주어 보며 숲 인문학이라는 장르를 개척하고 활성화시키는데 매진해 보고 싶다. 숲이 인간생활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많은 사람들과 토론하고 공감대를 넓혀 볼 생각이다.
또 한 가지 투석환자와 같이 장기적인 투병생활을 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은 물론 연기금과 같은 공적 자금이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데도 노력해 보고 싶다. 특히 내가 평생 몸담았던 언론계를 중심으로 이 같은 여론을 환기시키는데 미력이나마 보태고 싶다.
환자들에게 숲 교육과 치유를 통해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숲 치유의 효과를 맛보게 한다면 결국 합병증을 줄여 전체적인 진료회수를 줄이고 처방, 투약하는 약도 줄일 수 있어 의료보험 재정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숲은 내게 치료보다 더한 용기와 희망을 줬으니 숲은 유능한 의사들이 모인 ‘제2의 종합병원’이나 다름없다. 나는 몇 년 동안 차곡차곡 쌓인 확신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숲 교육과 치유의 효과를 알리고 증언하는 일을 하고 싶다. 만일 기증자가 나타나 수술을 하고 제2의 삶을 살게 된다면 내가 해야 할 일, 나아가 제2의 직업으로 삼고 싶은 일로 숲 체험 교육, 산림관광과 레저 전문가로 결정했다면 과연 욕심일까?
*이 작품은' 2019 전국산림교육치유수기공모전'에서 대상 (농림장관상)을 수상한 작품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