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날개란 말이 있듯이 남자든 여자든 길을 나서려면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옷차림이다. 하지만 평상시에 입던 옷이 아닌 나들이 정장을 입으면 왠지 어색한 느낌이 든다. 분명 내 옷인데 느낌이 남의 옷을 입은 듯할 때는 행동까지 부자연스러워진다.
오래간만에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학 친구이니 오랜 친구다. 더구나 내가 겁 없이 잡지사를 차렸을 때는 대구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기꺼이 편집장을 맡아준 친구다. 그런 친구에게서 몇 년 만에 전화가 왔으니 달려 나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몇 년 만에 보는 친구에게 깨 쩨쩨한 몰골로 만날 수는 없어 옷장을 이리저리 뒤지다 양복 한 벌을 골랐다.
약속 장소가 호텔이니만큼 더욱 옷차림에 신경이 쓰였다. 입가에서는 흥겨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고양이까지 옆으로 다가와 옷맵시를 봐주고 있었지만 좀처럼 입고 나갈 옷을 결정하기가 힘이 들었다. 옷장 속에 고이 모셔둔 양복을 모두 꺼내 입어 봐도 영 마음에 드는 양복을 고를 수 없었다.
고양이 ‘양말이'가 짧으면서도 단호하게 ‘야옹’하는 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입은 옷이 어색한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병원에 다니며 투석을 받은 지가 8년이 다 되어가고 그동안 몸무게가 66㎏에서 10㎏이상 빠졌으니 맞는 옷이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30여분을 이것저것 고르다 잠바를 입고 집을 나섰다.
40년 전쯤에도 비슷한 일이 펼쳐졌다. 다만 그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 아버지였다는 사실이 다를 뿐.
아버지는 직업군인이셨다. 그것도 훈련양이 많기로 소문난 해병대원이었다. 박봉에다 연일 훈련이었으니 사복을 입을 여유도 기회도 드물었다. 백령도로 김포로, 때로는 제주도와 동해안 주문진으로 훈련을 나갔고 한번 나가면 보름 이상은 족히 걸렸다. 사복이라고는 잠바 몇 벌이 다였고 양복이라고는 옷 장을 다 뒤져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결혼식마저 한복을 입고 올렸을 때이니 양복을 마음먹고 장만하지 않고서는 구경을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서 그해 늦가을쯤의 일이다.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날 군부대 위문 공연을 간다며 연극 연습에 한창이었다. 군부대 공연 전 사전 학부모들에게 연극 공연을 보여주고 평가를 받아보겠다는 교장선생님이 방침이 문제를 일으켰다. 바로 출연자들은 아버지, 어머니를 모셔오라는 것이었다.
눈치를 보니 집집마다 부모님들이 난리였다. 어머니들은 며칠 전부터 미장원을 들락거렸고 아버지들은 회사와 부대에(포항은 포철과 해병대가 주요 직장임) 휴가를 사정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손을 잡고 학교에 가야 하는 당일 아침이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를 하던 어머니께서 갑자기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어머니 옷은 준비가 되었는데 아버지가 입고 갈 마땅한 옷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옷이 없었다기보다 정확히는 양복이 없었다는 표현이 옳았다.
고민을 하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자전거를 타고 나가셨다. 그 길로 어머니는 아버지의 상관이셨던 대대장 관사로 가 대대장님의 양복을 빌려 오셨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모님이었기 망정이지 군대문화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날 나는 아버지,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학교로 가는 동안 양복을 입은 아버지의 모습을 수십 번 힐끗힐끗 쳐다보곤 했다. 아버지의 모습은 그때까지 한번 도 볼 수 없었던 멋진 모습이었다. 요즘 아이들 표현을 빌리면 “짱!”이었다.
아버지는 그 뒤로도 양복을 입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전역을 하시고도 벽돌공장과 비닐하우스 농사를 지으셨으니 양복과는 거리가 먼 직업을 가지셨다. 하지만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양복을 입고 나서면 오래간만에 꺼내 입는 양복이었지만 누구보다 잘 어울렸다. 175㎝가 넘는 훤칠한 키에 여든에 가까울 때까지 허리가 꼿꼿했으니...
아버지가 짬짬이 이런저런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장만한 그 양복들은 돌아가신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옷장에 보관하고 있다.
나도 양복이 꽤 잘 어울리는 체형이었다. 어릴 때부터 정장에 가까운 옷에다 구두를 싣고 다녀 정장이라고 해서 불편할 것도 어색할 것도 없었다. 외동아들로 태어난 덕을 톡톡히 보고 자랐음에 틀림이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양복이 몇 벌 있었다. 친구 녀석들은 미팅이나 페스티벌, 데이트가 있는 날이면 내 옷을 빌려 입기 위해 하숙집을 들락거렸다. 입고 난 후 세탁을 해주지 않아 세탁 비 꽤나 들어갔지만 애프터에 성공했다는 말에 보람을 찾았다. 특히 대학 입학 기념으로 외삼촌에게서 선물 받은 쑥색 양복은 노란색 와이셔츠와 잘 어울려 봄철에 입으면 귀공자 같다는 평을 여러 번 들었다. 나는 이 양복을 입고 미팅에 나갈 때마다 항상 성공(?)을 해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20여 년 이상 양복을 입고 출근하던 직장에서 두해 전에 퇴직을 했다. 조금 이르고 변형된 퇴직이지만 퇴직은 퇴직이다. 신문사의 배려로 출퇴근이 자유로운 논설위원으로 사설을 쓰는 일을 하고 있지만 마음 한편에는 양복을 차려입고 출근 시간에 쫓기며 달려 나가던 때를 그려본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가 잠바 차림이 여유롭고 잘 어울린다며 활짝 웃는다. 그 어떤 옷을 입고 만나도, 그 어떤 이야기를 나눠도 편안한 친구이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양복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그날만큼은 명품 양복을 입고 눈앞을 왔다 갔다 하는 신사가 부럽지 않았다.
양복은 새것이 좋지만 친구라는 존재는 오래될수록 좋다.
며칠 뒤 친구로부터 양복 한 벌이 배달돼 왔다.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