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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오랑 Feb 28. 2023

수필) 미역국

전 세계에서 미역을 먹는 민족은 몇 안 된다. 우리나라와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과 태평양 지역, 일부유럽과 중앙아메리카 정도라고 하니 놀랄 따름이다. 그중에서 우리나라가 단연 가장많이 섭취한다.서양에서는 미역을 그저 바닷속에 늘린 귀찮은 잡초쯤으로 여긴다.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 미역을 서양인들은 찬밥 취급을 하고 있다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나의 외갓집은 말 그대로 대문 앞이 바다인 어촌 마을이었다. 당연히 외갓집에는 생선은 물론 바다에서 나는 미역과 청각, 진저리, 다시마, 우뭇가사리 등 해초들도 항상 집안에 가득했다. 특히 이 중에서 미역은 채취량이 많고 품질도 좋아 미역 철이면 전국에 있는 친척들에게 보내지는 것은 물론 우리 집 광에는 일 년 내내 미역이 보관돼 있었다.

여름이면 여름대로, 겨울이면 겨울대로 미역은 중요한 식재료였다. 여름 철 냉국에 들어가는 미역은 자연산일수록 질감이 쫄깃해 그저 그만이다.

최애 반찬 중 하나인 미역을 접할 때면 지금도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외갓집 앞 갯바위 틈에서 미역을 채취하던 일이 하나요, 또 어느새 나타나 놀아 달라면 장난을 치던 돌고래들이 떠오른다.

고래는 사람과 친숙한 동물이다. 울주군 암각화에서 볼 수 있듯이 고래는 사람들에 의해 길러진 가축과도 같았다. 내가 태어난 고향 영일만 도귀야(도구) 지역의 ‘연오랑세오녀 설화’에도 연오랑이 고래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내륙 사람들이 소와 말을 기르듯 바닷가 사람들은 고래를 기르지 않았을까 추정해 볼 수 있다.

실제로 고래는 내게도 친숙한 친구였다. 미역 철 멀리서 고래를 “획~ ”하고 부르면 고래는 달려와 내 가까이에서 고개를 물 위로 내밀며 인사를 했다.

고래는 특히 미역밭에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새끼도 미역밭에서 낳고 키운다고 한다. 그러니 고래가 미역밭에서 노는 것을 어부들과 바닷가 마을 사람들은 자주 본다고 한다.

우리가 물속에서 수영하거나 노는 것을 ‘멱을 감 는다’고 말하는데 그 어원이  고래가 미역을 감고 노니는 것을 보고 ‘미역을 감 는다’에서 왔다.

내 고향 포항지방의 미역국에는 소고기 보다 미역치나 도다리를 넣고 끓이는 경우가 흔하다.

대전 출신의 옆지기는 지금까지도 이런 미역국을 즐기지 않는다. 아니 선천적으로 미역국을 즐기지 않는 듯하다.

아이 셋을 낳을 때까지 옆지기는 시어머니가 끓여 준 미역국을 마지못해 먹는 시늉만 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면 남겨진 미역국은 모두 내 차지였다. 아이는 옆지기가 낳고 미역국은 내가 먹었다.

지금은 하늘나라로 갔지만 우리 집에는 온 식구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 9년을 함께 산 양말이라는 토종 검은 고양이 가 있었다.

양말이는 집 보일러실로 숨어들어 새끼를 낳는 바람에 한 식구가 됐다.

4마리의 새끼를 낳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날 쳐다보는 눈빛이 아련해 마침 먹다 남은 소고기 미역국을 반 그릇쯤 퍼 줬다. 개 눈 감추듯 아니 고양이 눈 감추듯 뚝딱 비웠다.

양말이는 그런 탓인지 이웃집에서 미역을 말려 놓고나 길거리에 미역이 떨어져 있으면 반드시 물고 들어와 내 앞에 내려놓는다. 아마도 미역국을 끓여달라는 의사표시가 아닌가 여겨졌다.

양말이는 그렇게 우리 집에서 3번의 새끼를 낳았고 미역으로 산후조리를 했다.

3월 말이면 호미곶 일대 바닷가에서는 미역을 말리는 광경이 펼쳐질 것이다.

날씨가 좋으면 해녀들과 마을 어촌계에서 미역을 수확할 것이다. 또 동네 꼬마

녀석들은 파도가 치는 바다를 향해 소나무 가지를 잘라 만든 갈고리로 미역을 건저 올릴 것이다.

미역 수확 철이 다가오니 벌써 입안에는 침이 고인다.

오늘은 동나기 전에 외갓집 동네에다 미리 예약 주문전화를 해 놔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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