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내니 우리 모두의 숲이 생겼어요
“따르릉따르릉”
오늘따라 전화벨 소리가 일찍 울렸다. 아침 9시 면 어김없이 모이는 옆지기의 숲해설가 친구들이 찾는 전화다. 오늘부터 새로운 길을 뚫어 보자며 의기투합했다는 소리를 들은 터라 오늘따라 소집을 알리는 전화가 아침 일찍부터 울린 것이라 예상했다. 옆지기와 동료들은 60,70년대 ‘국토 개발단’의 명칭을 빌려와 ‘숲 개발단’이라고 부른다. 포항, 경주, 영천 지역 회원 10여 명이 모여 동호회 형태로 운영되는 이 모임은 매 분기 1개를 목표로 도시 주변 둘레길이나 마을 등산로 산책길을 개설하고 있다. 과거 국토 개발단이 고속도로를 뚫었다면 이들은 마을 등산로와 산책길을 뚫는 단(?)이다. 물론 실제 모임 이름은‘느티나무’라고 부른다.
사실 이들이 산책로 개척에 나선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포항 지곡지역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숲교실을 여는 과정에서 필요성을 느껴서 이다. 포항 지곡동은 서울 강남의 대치동이라 불리 울만큼 포항 지역 교육의 1번지이다. 이런 지역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공부가 아닌 ‘잘 노는 방법‘을 가르치는 숲교실을 여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다. 처음 교실을 열었을 때 모인 학생이 3명이었다는 것에서 반응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입소문을 타고 참가 학생들이 늘기 시작해 3개월여 만에 10여 명으로 늘었다. 처음에는 집 주변 나무 그늘에서 진행하던 수업이 인원이 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존 장소가 좁아지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급기야 이들은 낫과 작은 톱을 들고 교육장 확보에 나섰다. 지곡동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산을 5개 구간으로 나눠 차례차례 길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서툰 낫질과 톱질로 작업의 진도는 더디게 진행됐지만 1주일 정도 지나자 오솔길 정도 넓이의 길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잡목과 풀이 우거진 산에 낫질과 톱질로 뚫기 시작한 길이 며칠 후 큰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오솔길이 나기 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던 인근 마을 주민들이 한 사람 두 사람 올라와 다니기 시작해 어느새 확연히 드러난 길이 되고 잡목과 풀을 스스로 제거하는 주민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결과가 나타난 것이었다. 지금은 전 둘레길 4㎞가 완전 개통이 돼 하루에도 이용주민의 수가 수백 명에 달하고 있다.
지곡동 둘레길에 힘을 얻은 옆지기는 연일읍 달전지 둘레길에 도전해 지난해 막혔던 2㎞여 구간을 정비했다. 올해에는 해맞이공원 둘레길의 샛길 작업에 나설 예정이다. 이곳 작업이 완공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숲에 접근하기가 쉬워지고 숲의 깊숙한 속살까지도 관찰할 수 있어 또 다른 숲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직업도 다르고 나이도 다양한 회원들이 이렇게 한 가지 일에 몰두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이런 사소한 일이 과거 고속도로를 뚫는 일만큼 중요하고 긴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고속도로가 국토의 정맥이 되어 경제가 활성화되는 계기를 마련했듯이 이들이 숲에 낸 길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접근하기가 어려웠던 산을 우리가 활용 가능하고 언제나 찾을 수 있는 ‘ 숲’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프로스트가 ‘가지 않은 길’이란 시에서 숲길을 인생의 길에 비유하며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표현했다면 이들이 숲 속에 적극적으로 길을 내고 시민들에게 가야 할 길을 제시하며 건강과 여유를 선물하고 있다는 것에서 자부심을 느껴도 충분할 것이다.
이들이 숲길. 샛길에 대한 신념은 확고해 보인다. 산과 숲이 과거 그저 바라만 보고 절대적으로 보호만 해야만 하는 공간으로 간주됐다면 현재는 이를 적극 활용하고 나아가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는 공간으로 인식을 전환해야 더 크게 보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더 숲에 길을 뚫고 개척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들은 최근 조그마한 바람을 가지기 시작했다. 바로 산악회나 등산 동호회원들이 각자 1,2개 코스식을 맡아 산책로를 개설하는 작업에 동참하는 일이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동네 주변 산에 조그마한 산책로를 낸다면 주민들의 접근로가 확보되고 산을 이용하는 주민들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로 방치해 두면 아무런 쓸모가 없는 산이 조그마한 산책로가 생김으로서 늘 우리 가까이에 있는 숲으로 재탄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낫과 톱을 들고 나서는 옆지기와 동료들이 오늘따라 고속도로를 뚫는 산업역군 못지않게 늠름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