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숲 이야기 (6) 산등성이를 오르며

무덤 앞에 막걸리 한잔을 부어 놓다

by 연오랑

비가 오다 그치자 오늘도 무언가에 끌리 듯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선다. 벌써 6개월여 째 매일 같은 차림으로 집을 나서는 중이다. 누가 오라는 것도 아니고 누가 등 떠미는 일도 아니고 더구나 누가 센 일당을 준다고도 한 일도 아닌데도 그저 그 시간만 되면 집을 나선다.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마을 앞산이 있다. 초등학생 시절, 눈 오는 겨울에는 토끼를 잡으러 또는 칡과 더덕을 캐러 동네 꼬마들이 마치 제집 들락거리던 산이었다. 높이가 200m 남짓한 산이라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오를 수 있는 그런 산이었다.

그 산을 쉰을 넘긴 나이에 거의 매일 오르다시피 하고 있는 것은 그 산이 내게 커다란 과제 하나를 던져줬기 때문이다.

건강이 나빠져 남들보다 이른 퇴직을 하고 고향마을로 내려왔다. 고향이라고 해봐야 어릴 적 친구 녀석들은 모두 도회지로 나갔고 옛 어른들도 나이가 들어 대부분 돌아가셨으니 낮 설기만 한 곳이지만 별 망설임 없이 촌집 하나를 구해 고향으로 내려왔다.

‘범도 죽을 때가 되면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말을 어느새 신봉하게 되어서 인지도 모른다.

30여 년 만에 내려온 고향 마을이었지만 사나흘 둘러보니 웬만한 곳은 다 둘러볼 수 있었다. 이 골목에서는 술래잡기를 하고, 저 골목에서는 막대 치기를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내가 사는 앞 각단을 벗어나 뒤 각단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니 그곳에는 내 단짝 친구가 치는 피아노 소리가 울리는 듯했다. 마을 한가운데 있었던 우물은 온데간데없고 흙 담 밑에서 자라던 돼지감자도 자취를 감추었다.

30년이라는 세월은 추억을 철저히 허물고 대신 새 건물과 높다란 담장들만 쌓아 놓고 있었다.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동네 가장 깊숙한 곳, 대나무 숲 안쪽에 유일하게 옛 모습 그대로, 세월이 비껴간 듯한 ‘이 진 사 댁’이 남아있어 놀랐다. 아흔아홉 칸은 못 되지만 쉰 칸 정도는 되는, 동네에서 가장 큰 대궐 같은 집이다. 누가 볼보는 사람이 없는지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은 지붕에 와송이 자라고 거미와 주인에게서 버림받은 고양이들의 합숙소가 되어 있었다. 마당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는 순간 살랑거리며 물결치는 대나무들과 함께 추억이 사각사각 되살아났다.

그곳 주인아주머니는 마흔이 가까웠지만 아이가 없었다. 요즘으로 치면 연예인 같이 작고 백지장처럼 하얀 얼굴을 하고 있었고 몸매는 가냘 퍼 바람이라도 조금 세게 불면 날아갈 듯 우려됐다. 하지만 그 아주머니는 동네 아이들에게 든든한 후원자였다. 우선은 아이들이 집에 놀러 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넓은 마당 한 편에서 놀고 있으면 감자도 삶아주시고 탁구공만 한 사탕도 몇 개씩 주시 곤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더 반긴 것은 미션을 수행하면 얼마간의 용돈도 주신다는 사실이었다.

바로 그 미션이 솔방울을 모아 오는 일이었다.

솔방울은 마을 앞산에 가야 많았다. 친구 3,4명만 가면 마대자루로 한 자루를 모으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 앞산의 주인이 바로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의 건강은 겨울철이 되면 더 나빠졌다. 병원에 며칠씩 입원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그동안 모은 솔방울을 광에다 쌓아놓고 용돈을 탈 날만 기다렸다.

아주머니는 그때마다 “모두들 부지런히 주워 다 날랐네” 하시며 어깨를 토닥여 주셨다.

나는 그때마다 아주머니의 건강이 더 안 좋아지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나는 아주머니가 솔방울 포대를 움켜쥐는 손등을 볼 때마다 걱정이 앞섰다. 대게같이 긴 손가락과 손등 여기저기에 선명하게 나타난 혈관이 신경 쓰여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께 슬쩍 묻곤 했다.

아주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 겨울 방학, 눈이 펑펑 내리던 날 돌아가셨다. 감옥에 있던 남편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장사 지낸 지 일주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눈이 내리는 가운데 앞산 중턱에 묻히셨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돌아와 커피 물을 올려놓으며 “내일은 저 앞산에 한번 올라가 봐야겠다”라고 생각했다.

문뜩 그 아주머니의 무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앞산에 오르는 길을 만만치만은 않았다. 옛날 한걸음에 달려가던 때와는 다를 것이라 여겼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초입까지 가는데 만도 벌써 땀이 비 오듯 했다. 이런 상태라면 중턱에 있는 아주머니 산소까지 힘든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다행인 것이 계절이 여름철이라 가다가 그늘에서 쉬었다 갈 수 있다는 점이 위안을 줬다.

산의 초입은 소나무 숲이 한동안 계속됐다. 소나무 사이로 이제 막 키를 키우기 시작하는 상수리와 신갈, 굴참 나무 등 도토리 6형제들이 서로 키를 재고 있었다. 소나무 위에는 청설모들이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며 재주를 뽐내고 있었다.

정면을 돌아 산등성이로 접어들었다. 이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야 쉽게 중턱에 다 달을 수 있다.

30여 년 만에 밟아 보는 산등성이는 옛 모습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풍파에 시달려서 인지 나무들의 뿌리가 고스란히 드러나 마치 뱀이 기어가는 듯했다. 이 깊은 산중에 뿌리 하나 덮어 줄 흙이 없다니 나무들의 운명 또한 기구해 보였다.

마치 그 옛날 아주머니의 운명처럼 그리고 손등에 나타난 굵은 핏줄처럼.

나는 아주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그 원인이 손등에 선명하게 드러난 핏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동네 어느 아주머니의 손등도 그렇게 핏줄이 짙푸르고 튀어나온 사람은 없었다.

아주머니의 남편은 아버지가 공무원이었음에도 늘 수배자로 살았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지만 그분의 죄목은 긴급조치 위반이었다. 서슬이 시퍼런 유신 시절 유신에 반대하는 일에 앞장섰으니 수배자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아주머니의 유일한 외출은 바로 교도소로 남편을 면회 갈 때뿐이었다.

짐작컨대 옥바라지에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얼마나 외로웠으면 시집올 때 그렇게 통통하고 예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대나무처럼 마른 사람으로 변했을 까 싶다.

무덤은 초라했다. 돌보는 사람이 없는지 풀이 자라 봉분이 어딘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남의 묘에 손댄다는 것이 실례가 될 것 같아 무덤을 한 바퀴 돌아보고 발길을 돌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산등성이 중간쯤을 내려오다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다행히 구르지는 않았지만 마치 아주머니가 내 발목을 잡는 듯해 한동안 앉아 뿌리를 쳐다보았다.

서로 엉켜 있는 뿌리, 간혹 깊이 박힌 뿌리도, 전신을 드러낸 뿌리도 있었다. 그 모두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느껴졌다.

당시 아주머니의 몸도 마음도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계셨으리라.

다음날부터 나는 거의 매일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다. 산 아래 흙들을 배낭에 담아 짊어지고 산에 올랐다. 그 앙상한 뿌리를 하나하나 덮어 나갔다.

그 뿌리를 덮는 일은 곧 아주머니의 앙상한 손등의 핏줄을 덮는 일이요 그렇게 일찍 허무하게 돌아가신 아주머니의 고달픈 인생을 덮어 위로하는 일이라 여겨졌기에 열중할 수 있었다.

6개월여 만에 위태로워 보이는 뿌리들은 모두 덮었다. 다 자란 나무들의 뿌리라 새가지가 뻗어 나지는 않겠지만 비바람이 벗겨 알몸이 된 처지는 가려줄 수는 있게 됐다. 혹여 찾는 이가 있다면 편안하게, 걸려 넘어지는 법 없이 무덤을 찾을 수 있으리라.

무덤 앞에 막걸리 한잔을 부어 놓았다.

그 옛날 아주머니가 남들보다 내게 더 듬뿍 챙겨 주시던 돈으로 어느 친구들보다 먼저 32색 크레파스를 사고 축구화를 살 수 있었다. 늦게나마 그 보답이라도 한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돌아서는 순간 나비 한 쌍이 무덤 뒤쪽에서 날아와 나를 배웅하는 듯했다.

며칠 후 저녁녘에 비가 내리더니 그치고 앞산 중턱에 무지개가 결렸다. 그 무지개를 타고 아주머니가 다가와 내게 솔방울을 한 아름 부어주셨다. 돌아가는 길에 아주머니는 말끔히 단장된 산 중턱을 오르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주머니는 그렇게 내게 고마움을 표했고 나는 고향에서의 추억 또 한 페이지를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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