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이면
재환
비 오는 날이면 홀연히 나타나는 그림자 하나 있다
맑은 날 나타나면 가름이라도 해 볼 수 있겠지만
비가 와야 나타나니 도리가 없다
빗줄기 굵어져 마음에 창살 생기면
창가에 쓴 커피 놓고 시선 둘 곳 찾는다
그 끝에는 실수투성이 내 젊은 날이 담장에 걸려있고
마치 전장처럼 쓰러진 동료 뛰어넘고 달리는 병사가 있다
차라리 짧은 전쟁영화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The End’ 였으면 좋겠다
열심히 달리다 혹 발로 찬 다른 삶이 있었을까
앞만 보고 달리다 무심코 밞은 여린 풀 한 포기 있었을까
이 비 그치면
당장 밖으로 달려 나가 온전한 그림자 찾아 나서고 싶다
허둥대고 방황하는 내게
그 그림자,
어느새 큰 눈, 가느다란 입술로
잔잔한 미소까지 지어 보인다
이것으로 면죄부를 받은 것일까
내일 해 뜨면
묶은 그림자 보내고 새 그림자 맞이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