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장
재환
하얀 모래 백사장에 서면
나는 겸허해진다
하얀 모래는 님의 마지막 모습과 너무 닮아있다
님의 일생이 순탄하지 않던 것처럼
하얀 모래의 일생도 순탄하지 만은 않았을 터
오랜 시간 공들여 구애를 해 짝을 만났던 것처럼
태산 위의 바위가 오래 동안 계곡을 타고 흘러 바다를 만났고
마치 촌노의 고집처럼
순서한번 흩트리지 않고 몰려오는 파도에 실려 몽돌이 되고
세월을 이길 수 있는 장사가 어디 있으랴
굵고 듬직하던 청년이 노인이 되는 것처럼
모래의 청년 시절의 모습은 태산을 떠받들던 바위였을 터
이젠 마음 비웠노라
여름이면 상큼한 비키니아가씨들도 달려와 안기고
깨가 쏟아지는 연인들이 인연을 만들고
단란한 가족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나를 의지하는데
비록 푸른 바다 가장자리에서
인생의 갓길에서
하얗게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네 앞에서면
나는 발가벗은 듯 겸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