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대 1
재환
저녁노을이 붉은 날
긴 장대 위로 새 한 마리 날아왔다
마을에 수호신이 생겼다며 무당은 굿판을 벌이고
고을 원님은 은근히 승차를 빌어본다
남쪽에서 날아온 새는
수호신이 될지
마을경계를 표시할지
결정도 못했는데도 말이다
며칠을 하늘을 우두커니 쳐다보다
김진사댁 도련님 과거급제를 기원하기로 한 후부터는
미동도 않고 나뭇가지에 앉아 기도를 한다
솟대는 이미 알고 있었다
투자 중에 가장 값진 투자는 사람에게 투자하는 일이라고
남들은 기러기니 오리니 하며 수근 거리지만
도련님 급제를 기원하는데 오리면 어떻고 또 기러기면 어떨까
입가를 스치는 바람, 길게 늘어뜨린 목을 감싸 도는 바람
칼바람으로 변해
추우면 추운 만큼
밤이 길어지는 만큼
책 읽는 소리 정겨워지면 그만이다
솟대를 매일 쳐다보는 나는
그 새보다 더 임이 그리운데
어디에 앉아 밤을 지세고
무엇을 위해 고개를 높이 드나
봄이 가고 여름이 와도
솟대 위 새를 닮아
바라는 것 없이 기도만 드리고 있는
그런, 마음 비운 날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