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오랑 May 25. 2023

#시가 있는 봄(102) 솟대 1

솟대 1

                    재환

저녁노을이 붉은 날

긴 장대 위로 새 한 마리 날아왔다

마을에 수호신이 생겼다며 무당은 굿판을 벌이고

고을 원님은 은근히 승차를 빌어본다

남쪽에서 날아온 새는

수호신이 될지 

마을경계를 표시할지

결정도 못했는데도 말이다

며칠을 하늘을 우두커니 쳐다보다

김진사댁 도련님 과거급제를 기원하기로 한 후부터는

미동도 않고 나뭇가지에 앉아 기도를 한다

솟대는 이미 알고 있었다

투자 중에 가장 값진 투자는 사람에게 투자하는 일이라고

남들은 기러기니 오리니 하며 수근 거리지만

도련님 급제를 기원하는데 오리면 어떻고 또 기러기면 어떨까

입가를 스치는 바람, 길게 늘어뜨린 목을 감싸 도는 바람

칼바람으로 변해 

추우면 추운 만큼 

밤이 길어지는 만큼

책 읽는 소리 정겨워지면 그만이다

솟대를 매일 쳐다보는 나는

그 새보다 더 임이 그리운데

어디에 앉아 밤을 지세고

무엇을 위해 고개를 높이 드나

봄이 가고 여름이 와도

솟대 위 새를 닮아

바라는 것 없이 기도만 드리고 있는 

그런, 마음 비운 날의 밤.


작가의 이전글 #시가 있는 봄(101) 사랑마을 택전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