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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오랑 Jun 05. 2023

#시가 있는 여름(106) 둘레길

둘레길

           재환

길 없는 산언저리  풀 섶 위로

십 문 칠 워커 싣고 새로운 길 만든다

디디는 발자국마다 새로운 길 열리고

그 길은 누군가에게는 곧 신작로가 된다

앞산마저 태산으로 보이던 시절

보름 달빛아래 억새의 바다가 출렁일 때

엄마 냄새를 맡으며 업혀 걷던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만큼은 나지 않은 길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고

갈림길이 나와도 고민할 필요는 더더욱 없었다

나의 삐져나온 두발은 늘 여유로웠다

옛날에는 이웃동네 드나드는 마을길 같았던 길

그 풀 섶에는 한번 밟았던 인연으로 길이 생겼다

그것 봐라, 사람의 발자국 하나가 얼마나 무서우냐

내 길도 나 스스로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누가 기억조차 하랴

바다 짠물 냄새가 배어있고

온 둘레길을 미리 그려둔 탓에

잠시 바다가 보이는 길가 바위 위에 자리 잡고 누워본다

간간히 뭉게구름 몰려와 여우비를 뿌린다

나는 어머니 등에서처럼 두발 벌려 공중에 휘저어 본다

둘레길에는 어머니의 등과 같은 편안함이 있다

어머니는 그 둘레길에 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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