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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오랑 Jun 26. 2023

#시가 있는 여름(116) 석류나무와의  이별

석류나무와의 이별

                              재환     

내가 내일이면 떠날 그 집의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시각

마당 구석 석류도 입을 열고 나와의 마지막 대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주로 신나는 이야기보다 슬프고 고민되는 일을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했고

석류는 일천한 경험으로 조언을 해줄 수 없었는지 그냥 듣기만 했다     

내가 사기꾼에게 당해 파산직전의 상황임을 밀 할 땐

석류는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그냥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당한 나보다 자신이 더 분했던 모양이다

그날 나는 피우던 담배꽁초를 그냥 던지고 왔으나

그 불은 석류가 밤새 잎으로 부채질을 해 태워 버렸다      

딸 둘을 연이어 낳았을 때 일이다

나는 장손의 도리를 다 못한 죄책감에 달을 보며 와인 두병을 다 비웠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비틀어 짜 술잔을 채워주었다

나는 그런 위로 주에도 또 세 번째 딸을 낳았다          

20년을 살던 집을 얼마 전 팔았다

키우던 강아지 같았으면 데리고 가겠지만 석류를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단지 나는 새 주인에게 집값을 이백만 원 깎아주는 조건으로

석류나무를 영원히 베지 않기로 계약했다

그것이 내가 석류에게 마지막 해 줄 수 있는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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