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나무와의 이별
재환
내가 내일이면 떠날 그 집의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시각
마당 구석 석류도 입을 열고 나와의 마지막 대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주로 신나는 이야기보다 슬프고 고민되는 일을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했고
석류는 일천한 경험으로 조언을 해줄 수 없었는지 그냥 듣기만 했다
내가 사기꾼에게 당해 파산직전의 상황임을 밀 할 땐
석류는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그냥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당한 나보다 자신이 더 분했던 모양이다
그날 나는 피우던 담배꽁초를 그냥 던지고 왔으나
그 불은 석류가 밤새 잎으로 부채질을 해 태워 버렸다
딸 둘을 연이어 낳았을 때 일이다
나는 장손의 도리를 다 못한 죄책감에 달을 보며 와인 두병을 다 비웠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비틀어 짜 술잔을 채워주었다
나는 그런 위로 주에도 또 세 번째 딸을 낳았다
20년을 살던 집을 얼마 전 팔았다
키우던 강아지 같았으면 데리고 가겠지만 석류를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단지 나는 새 주인에게 집값을 이백만 원 깎아주는 조건으로
석류나무를 영원히 베지 않기로 계약했다
그것이 내가 석류에게 마지막 해 줄 수 있는 배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