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량제봉투
재환
전봇대 아래 쓰레기 배출장소라고 적힌 푯말 아래에 종량제 봉투가 놓여있다
검은 비밀봉투에 담긴 쓰레기 보다 어딘가 모르게 당차다
700원만큼의 무게 때문일까? 아니 700원의 당당함이다
아직은 쓰레기를 내놓기에 이른 시간이다
더구나 종량제봉투가 아닌 검은 비닐 속에 담긴
잡다한 쓰레기를 내놓기란 더더욱 그렇다
어둠이 짙어져야 비로소 검은 쓰레기가 모인다
고양이들의 만찬도 그즈음 시작된다
검은 비닐봉지를 헤집어 화려한 꽃을 피운다
돼지 뼈 한 조각 건질 수 있다는 기대를 하는 모양이다
그 녀석은 한글을 못 읽나 보다
종량제봉투는 종종 누군가의 자신감이다
봉투 값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쓰레기 주인의 자부심과
마치 나의 생활이 거리낌 없다는 자신감이
차곡차곡 쌓여야 배출장소로 향하게 된다
도둑고양이보다 더욱 은밀하게 모일 것이다
날이 새면 한때 더욱 당당할 것이다
청소원들의 손에 쥐어져 짐칸에 던져졌을 때
비로소 자신이 ‘갑’이 아닌 ‘을’ 임을 알게 된다
“쓰레기 같은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