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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오랑 Jul 24. 2023

#시가 있는 여름(123) 목욕

목욕

                            재환

김 서린 거울에는 귀신이 붙어 산다

머리에 물을 뒤집어쓴 모습이 흡사 귀신같다

때를 밀고 비누칠을 하고 나서 거울 앞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말끔히 생긴 사내가 사각 거울을 차지하고 있다

돌아앉아 비누로 거품을 내 머리를 감아본다

바닥에는 거품과 함께 하루 종일 나를 포장한 위선이 떠 내려간다

목욕요금 사천오백 원

오염됐던 마음까지 씻어준 목욕 요금치고는 너무 싸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거울 앞에 다시 선다

거울 앞에는 씻어낸 얼굴에 또 무엇인가 바르라며 잔뜩 쌓여 있다

옷을 입고 구두를 싣고 문을 나서며

나는 지불한 사천오백 원을 다시 돌려받고 싶어진다

역시 여름날 목욕은 조마조마 마음조리며

남자는 앞 거랑, 여자는 뒤 거랑에서 하는 것이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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