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문턱
재환
한 여름내 자태를 뽐내다 못해
남들의 살갗을 태우고 지치게 한 너
나는 네가 고집불통으로 짐작하고 규정했다
가을을 떠올리게 하던 오늘 아침
평소와는 다르게 손이 닿지 않은 저 지평선 너머 에서
시끌벅적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밤새 세상을 지배하던 어둠과
그에 빌붙어 호사를 누비던 빨간 입술의 그 마누라의 부부싸움
칼로 물 베듯 그 결과야 짐작되고도 남을 일이지만
묵묵히 지구본을 돌리며 때를 기다리던 중후한 너를 발견했다
그렇겠지,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하겠지
절반의 땅과 절반의 시간을 지배하던 이
자자손손 영화를 꿈꾸겠지
이제 자리를 비켜다오
더 원숙해진 모습, 더 유연해진 모습을 기다리는 이가 많으니
내일 즈음이면 가을이 왔다고
모두들 축제를 열어 나를 반길 텐데
더위에서 벗어난 기쁨을 노란 손수건을 흔들며 속내를 드러낼 텐데
비록 한철 반짝 나를 반기겠지만
나는 그 짧은 호사를 만끽하며 살고 싶다
힘차게 때로는 부드럽게 가을 속으로 유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