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듬다, 펄럭이다
재환
이곳 호국원에만 오면 안개가 낀다
73년 전 8월에도 그랬을 것이다
형산강을 사이에 두고
학도병이거나 갓 중학교를 졸업했을 청춘들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아우가 쏜 총에 형이 죽고
형이 쏜 총에 삼촌이 죽고
이 처참한 전쟁터에서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기도뿐
어머니는, 아니 노모는 말라버린 눈물대신
두터운 눈꺼풀을 달고 달려와
아들의 머리를 닦고
등을 닦고 발등을 닦는다
배냇저고리를 터 마련한 수건에는
젖 냄새 대신 세월이 남긴 비린내만 있다
말라버린 눈물 어쩌다 한 방울 흘리면
비석은 날름 삼켜 목을 축인다
이제는 돌보다 더 거칠어진 손으로
거북이 등껍질처럼 변한 마음으로
‘육군병장 고 김 00’
비문을 쓰다듬는다
이제야 태극기는 힘차게 펄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