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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오랑 Sep 04. 2023

#시가 있는 가을(143) 쓰다듬다, 펄럭이다

쓰다듬다, 펄럭이다

                             재환

이곳 호국원에만 오면 안개가 낀다

73년 전 8월에도 그랬을 것이다

형산강을 사이에 두고

학도병이거나 갓 중학교를 졸업했을 청춘들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아우가 쏜 총에 형이 죽고

형이 쏜 총에 삼촌이 죽고

이 처참한 전쟁터에서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기도뿐

어머니는, 아니 노모는 말라버린 눈물대신

두터운 눈꺼풀을 달고 달려와

아들의 머리를 닦고

등을 닦고 발등을 닦는다

배냇저고리를 터 마련한 수건에는

젖 냄새 대신 세월이 남긴 비린내만 있다

말라버린 눈물 어쩌다 한 방울 흘리면

비석은 날름 삼켜 목을 축인다

이제는 돌보다 더 거칠어진 손으로

거북이 등껍질처럼 변한 마음으로

‘육군병장 고 김 00’

비문을 쓰다듬는다

이제야 태극기는 힘차게 펄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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