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에 가는 사람들마다 흙을 조금씩 자루에 담아 가져 가면...
며칠 흐리던 날씨가 화창해졌다. 어제저녁 늦게까지 빨래를 하던 집사람이 오늘 해가 뜨면 빨래를 늘어 달라는 부탁을 하고 먼저 출근을 했다. 그 빨래들 중에 며칠 만에 난 햇볕을 받아 유독 눈에 띄는 흰 셔츠 하나가 있었다. 그 셔츠에는‘ 대한민국의 아침은 독도에서 시작됩니다 “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그 옷은 5,6년 전 독도가 속해 있는 경상북도에서 일본과의 독도 영토 분쟁을 의식해 캠페인 차원에서 옷을 제작하고 보급하던 때 내게 보내졌고 나는 또 그 옷을 입고 주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독도에 대해 강연을 할 때 입던 옷이다.
첫 번째 강연 때의 일이 생각났다.
“기자 선생님! 일본 사람들은 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하죠? 우리 경찰 아저씨들이 총 들고 지키고 있는데요 ”
1학년생 한 아이의 생뚱맞은 질문에 당황한 적이 있다. 아마 그날은 그 학생의 아버지도 평소와는 다르게 양복을 입고 출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독도 T셔츠를 입고 출근을 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남아서였으리라 짐작을 했다. 그 질문이 있자 아이들 중 네댓 명이 자기 아빠도 오늘 독도 T셔츠를 입고 출근을 했다며 맞장구를 쳤다.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강의라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순간 강의식 강연은 주목도가 떨어져 효과가 적으리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순간 나는 학생들이 들고 있는 스케치북이 눈앞에 들어왔다. 아마도 강연이 끝나면 야외로 미술 수업을 나갈 예정인 듯했다.
“일본 사람들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데 독도를 어떻게 하면 확실히 우리 땅이라는 점을 알릴 수 있을 까. 스케치 북에다 한번 그려 볼까?”
질문에 질문으로 응수하자 아이들은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열심히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 열기는 독도 T셔츠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 나이에도 벌써 애국심(?)이 샘 쏟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을 내 나름대로 했다.
아이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선생님들도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을 나타내는 선생님들도 많았다.
100여 명의 아이들 모두 망설임 없이 그림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곁눈질도 없었다. 게 중에서 가장 산만하고 말썽꾸러기라고 귀띔해 준 ‘동현’ 이도 이날만큼은 무언가에 홀린 듯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30여분이 지나자 벌써 그림을 완성한 친구들이 나왔다.
제출된 그림이 쌓여가자 나는 내 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8살짜리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의 생각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그림들이 대부분이었다.
잠시 후 나는 한 사람씩 나와 자기가 그린 그림을 설명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우선 말썽꾸러기이자 ‘짱’인 동현이의 그림부터 시작했다. 동현이는 독도에 내리는 사람들 어깨마다 자루를 짊어지고 있는 그림을 그렸다. 동현이는 “ 독도에 가는 사람들마다 흙을 조금씩 자루에 담아 가져 가면 그 흙을 쌓아 나무도 심을 수 있고 땅도 넓힐 수 있다”며 제 나름대로 흥분해가며 설명했다. 순간 머리가 띵해 오는 것을 느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발상이었다.
독도를 홍보함에 있어 T셔츠를 입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현이 생각대로 독도 입도객 모두 자루에 육지의 흙을 담아 운반한다면 독도는 머지않아 푸른 독도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한동안 동현이의 제안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민지’의 그림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민지는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인공 섬을 2개나 그렸다. “독도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일본 사람들이 욕심을 내는 것”이라며 “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섬이 더 있으면 더 가깝게 느껴질 뿐 아니라 일본 사람들도 욕심을 버릴 것”이라고 했다.
아빠가 군인인 ‘기영’이는 독도에 군인과 예비군 여러 명을 그렸다. 기영이의 생각은 군인 아저씨들 보다는 예비군 아저씨를 보내야 한다고 설명해 혹시 군인을 보내야 한다면 해병대인 아빠와 헤어지는 일이 생길까 봐 예비군으로 주장하는 것 같았다. 조금 이기적인(?) 생각이 들킬까 봐 기영이는 “우리 동네 예비군 훈련장 오는 아저씨들은 매일 어슬렁어슬렁 놀고 있다 “고 주장했지만 얄밉지는 않았다.
그밖에 아이들은 ‘매일 독도를 경비하는 아저씨들께 위문편지를 써 사기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 독도까지 수영을 한 사람이 우리나라에는 조오련 아저씨가 있는데 일본은 없다 ‘는 주장, 독도에 우리나라 토종개인 삽살개와 동경이, 진돗개를 보내 지키게 하자’는 주장,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다리를 놓자 ‘는(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의견도 눈에 띄었다.
평소 독도에 대해 억지를 부리는 일본 사람들이 밉고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우리 아이들의 생각을 읽고 난 후에는 그 두려움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우리 아이들이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수호 의지 또한 어른들 못지않다 는 것을 느끼는 순간 독도는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날 집에 돌아와 하루의 수업을 정리하는 노트에는 평소와 다르게 훨씬 두터운 기록을 남겼다. 시간이 벌써 새벽 2시를 향해 가고 있을 만큼 아이들의 생각에 충격을 받은 날이었다. 거실에 커놓은 TV에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 애국가가 흘러나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떠 새해 해맞이를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곳이 독도라고 생각하니 평소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독도에게 미안함마저 들었다.
독도야! 독도야! 너무 외로워 마라.
그날 아이들이 스케치북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던 사이 지은 시 한 편이 있어 함께 소개한다.
화룡점정
돌돌 말렸던 도화지가 펼쳐졌다
십 년도 더 돼
먼지마저 눌어붙었다
연필에 침까지 발라
화가는 마지막 지도 한 장 그린다
푸른 바다는 하얀 도화지 그대로 두고
솟아오르는 태양빛만
가늘고 긴 선으로 그린다
푸른 바다는 그대로 두고
파도만 긁어 하얗게 그린다
화가는 그린 적 없는데
누가 바다를
물만 가득한 바다를
내 땅이라 우기고 있나
짙푸른 바다 그리다
높은 파도 그리다
몽당연필이 다 되어 가지만
마지막 한 점
독도는 화룡점정이 된다.
* 이 글은 2016년 7월에 쓴 글이며 문학광장 56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