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님 첫번째
땅을 위를 걷고, 누웠다가 일어나고
공기를 헤집고, 품었다가 내뱉고
물 속을 헤엄치고, 적셨다가 말리고
우리는 지구라는 공간 속에, 공간을 구성하는 것들에 둘러 쌓여 살아가고,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우리와 닿아있는 부분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민음사 인문잡지 한편 4호의 <플라스틱바다라는 자연(김지혜)>에서는 미세 플라스틱의 양이 동물성 플랑크톤 보다 몇 배의 달아게 된 지금, 이 바다는 거부할 수 없이 동반되는, 되돌릴 수 없는 (동식물과 인간 모두를 포함한) 우리의 삶의 공간이 되었음을 이야기 한다. 실제로 바닷가에 가보면 빈 생수통 하나 없는 바다를 보기 힘들고, 가까이 다가가면 자잘한 쓰레기들이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어김없이 보게 된다. 우리가 느끼게 되는 바다의 "자연"스러운 모습의 의미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그래서 '아픈 바다'라는 표현이 쓰인 책을 떠올렸을 때 냉소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쓰레기들과 공존하는 바다는 이미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다는 아프지 않다. 바다라는 공간은 인간이 지구에 생겨나 조우한 드넓은 공간으로서 생명체의 삶의 모습을 닮아가는 유기적인 공간이다. 그렇기에 생명체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거울이 될 뿐이다. 바다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며 느끼는 세상의 모습은 우리의 헤집음 속에서 변형된다. 이러한 비가역적인 변형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세상은 다시금 우리의 피부에 닿고 오감각으로 하여금 경험된다. 삶의 공간과 그 속의 우리는 이러한 '주고 받는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고, 만들어지고, 변형됨을 거듭한다.
이를테면 플라스틱을 소비하는 행위 자체도 자신과 닿아있는 부분과의 관계 맺기에 해당한다. 자신이 경험하고 느끼는 세상을 어떻게 변형시킬 것인지 (대부분의 경우, 명확한 인지 없이) 결정하게 되며, 이는 또 다시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과 그 속의 나를 인지하는 경험으로 되돌아온다. 지구를 경험하는 여행 중에 플라스틱통이 떠다니는 바다나 비닐봉지가 굴러다니는 산을 보고, 찡그린 채 뒤돌아서게 되며, 뿌연 먼지로 가득찬 창문 밖의 풍경으로 아침을 맞이하게 되는 등 경험하고 경험될 세상을 조금씩 변형시키면서 천천히 이를 자신의 삶의 모습의 일부로 흡수하게 된다. 그러니까 내가 사는 세상이 곧 '그런' 공간이며, 동시에 내가 당연하게 살아가야할 '자연'스러운 세상임이 학습되는 것이다.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 맺기는 교집합이 어떠한 지에 따라 나의 삶에 어떻게 반영될지가 결정된다면, 개인과 공간 간의 관계 맺기는 개인이 철저히 부분집합으로서 공간을 오롯이 경험하는 방식으로 삶에 그 관계의 영향이 미치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바다를 지키자는 말보다 자신의 삶을 지키자는 말이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들숨 한번 날숨 한번에 끊임없이 지구를 변화시키고 있는 지금, 손끝까지 촘촘이 닿아있는 세상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지, 우리가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낄 세상이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를 둘러쌀지 결정되기 때문이다.
#뉴스아님 #2021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