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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감미 Aug 25. 2021

재난과 위험, 그리고 집

뉴스아님 여섯번째 | 포항지진 그 이후

코로나 19 상황으로 인해 위생이 최우선시되면서, 한동안 모든 커피 전문점에서 플라스틱 컵 사용이 권장되었다. 이걸 보면서 인간의 욕심으로 동물들을 비위생적인 공간에 가두고 마구잡이로 살생한 것에 대한 결과가 코로나 19인데, 또다시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으로 환경파괴를 일으키는구나 한탄했었다. 이러한 악순환은 여러 모습으로 작은 톱니바퀴처럼 사회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코로나 19는 사회 전반에 걸쳐 여러 정책의 집행을 불투명하게 만들어버렸다. 지금은 방역에 힘쓰고 있다는 명목으로 다른 여러가지 국가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소식을 들을 통이 좁아진 것이다. 물론 코로나 19 종식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외의 것들에도 관심을 두지 않으면 밀린 과제처럼 순식간에 문제가 커지고 만다. 그 와중에 LH 투기 사건이 터졌고, 필자는 뒷전으로 내던져두었던 의문들을 다시 떠올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국회는 지금. 당장. 무슨 업무를 하고 있기에 긴급한 법률 하나 심사하는 데 세월아 네월아 이며, 정부는 지금. 당장. 무슨 일을 하고 있길래 국토교통부 바로 밑에 있는 공공기관의 비리조차 막지 못한 것일까?". 필자는 정말이지 궁금하다. 막연히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궁금한 것이다. 한 시간 한 시간, 정부와 국회 안에서의 구성원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그것은 무엇을 위한 건지. 각 정당, 구성원들이 어떤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고 있길래 합의와 집행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인지. 사실 필자는 LH 투기 논란이 일었을 때 별 관심이 없었다. 갑자기 웬 투기지 싶었지만, 또 돈 문제이겠거니 했다. 나중에 하도 뉴스에 자주 나오길래 유튜브에 사건 정리 영상을 찾아보았을 때도 왜 이러나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며칠 전 포항 지진 피해 이재민들이 아직도 텐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눈이 뒤집혀버렸다. 포항 지진은 필자가 수능을 봤을 때였다. 햇수로 4년 차 텐트 생활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국가의 배상을 받아야 할 이재민들은 텐트 또는 컨테이너에서 더위, 추위, 불안정한 생활과 싸우고 있는데, 국가 소속 기관 직원들은 세금을 빼돌리려 열심히 나무를 심고 있었던 것이다.



3월 27일 SBS 뉴스토리 "포항 지진 4년, 아직도 텐트 생활"에 나온 포항시 방재정책과 인터뷰에서 도병술 과장은 "여러 정황을 고려해서 저희들이 피해 지원을 좀 폭넓게 해달라고 정부에 계속 건의 드리고 협의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답변했다. 포항지진특별법이 제정된 것이 2019년 12월이고, 진상조사위원회는 2020년 4월에 구성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2021년 3월 28일이고, 불과 이틀 전인 26일 필자는 뉴스를 통해 스크린 너머 아직까지 텐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열악한 생활을 보았다. 그동안 일이 어떻게 진행되어가고 있었던 것인지 찾아본 필자는 초기 특별법 제정 당시 이재민들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포항촉발지진범시민대책위원회를 비롯한 이재민들의 끊임없는 외침으로 특별법은 2020년 9월 1일, 2021년 3월 15일 개정 절차를 거쳤고, 현재 개정안으로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법률 시행과 달리 왜 이재민들의 분통 어린 인터뷰가 여전히 뉴스에 보도된 것일까. 여러 기사를 찾아보던 중 필자는 경북 신문에서 바로 오늘 28일 자로 "포항시, 지진피해 위기 '삶과 도시의 대전환' 기회로 만든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온 것을 발견하였다. 마치 SBS 보도를 의식한 듯한 자세한 개정안 집행 상황을 담은 기사였다. 지금까지 이재민들이 법률 집행 과정을 속속히 알 수 있는 창구가 제대로 없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물론 이 같은 포항시의 노력이 진정 이재민들의 목소리를 들은 결과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말이다.



3일에 걸쳐 여러 기사를 읽고, 집중 취재 영상을 찾아본 필자는 여러 문제점 중에서도 두 가지가 가장 크게 느껴졌다. 첫 번째로는 재난의 일상화가 이미 확정된 세상에 살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재난 대비책이 제대로 마련되어있지 않다는 것. 둘째로는 법률 제정 및 집행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자세가 안 되어 있어 제대로 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당사자들이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들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빠르게 안정된 생활로 돌아가야 할 이재민들이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더위와 추위 속에 고통받으며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앞서 언급한 SBS뉴스토리 취재 영상에는 SH(서울주택도시공사) 김형근 연구실장 인터뷰가 나온다. 김 씨는 인터뷰에서 "천막 텐트에서 사는 것은 하루 이틀인 거예요. 초단기간에 거주해야 되는 임시 거주시설이 있는 거고 거주 기간별로 대응 방안이 있어야 돼요"라고 이야기하며, 평상시에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일반 주택(게스트하우스 등)이지만 재난 발생 시 구호 주택으로 이용할 수 있는 모듈러 주택이 준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지진 발생이 잦은 일본을 예시로 들며 미리 방역 거점 부지 리스트를 갖고 있으면서 방재 공원같이, 위기 발생 시 구호 시설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전환형 재난 구호 시설뿐만 아니라 피해 보상에 대한 대책도 제대로 마련되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사전대비책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난 발생 이후 피해 복구와 피해 주민들의 생활 안정, 공동체 회복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학술논문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의 보상에 관한 법적 검토(구지선, 동아대학교 법학연구소, 2013)」에서 저자는 "자연재해는 예측 가능하지 않고 발생을 억제할 수 없는 위험이기 때문에 이해관계자의 협력을 통해 (보상금을) 분산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다. (중략)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 보상은 재난지원금이나 기부와 같이 일방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장단기적으로 확실한 재난 피해 방지 대비책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러 기사 내용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2020년 11월 7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포항 지진 발생 3년을 앞두고 피해 현장을 방문했을 당시, 이재민들이 모여서 텐트 생활을 하고 있는 흥해실내체육관은 들리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중앙일보 취재에서 이재민 최우득씨는 "서울서 총리가 왔으면 여기도 당연히 들러보고 가야지 뭐가 바쁘다고 휘리릭 가뿌나"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고위직인 총리조차 직접적인 목소리를 외면하는데, 그 사이 단계별로 법률을 이행해야 할 사람들은 얼마나 이들에게 관심을 귀 기울이고 있을지 의문이다. 이러니 LH 임시주택으로 이주했던 사람들과도 소통 문제로 손해배상 마찰이 생기고(대경 일보, "LH, 포항지진 이재민에 손해배상 청구 예고, 2021.02.04자 기사), 기약 없는 약속으로 살던 곳으로 되돌아가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들만 계속해서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재난이 일상화된 시대이다. 코로나 19로 비싸고 장기적인 대가를 치르고 있을 뿐이다. 이미 2020년을 통해 더 이상 장마가 아닌 대홍수라는 기후 위기를 앞으로도 겪을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한전의 전신주 과실 방치로 생긴 2019년 4월 발생한 축구장 1700개 규모의 강원도 산불, 국책사업으로 진행되었던 지열발전소로 인한 2017년 11월 포항지진 등과 같은 인재가 또다시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그러니까 바야흐로 역풍의 시대를 통과, 아니 언제 끝날지 모르는 위기의 시대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위기의 상황에서는 취약계층이 가장 먼저 배제되고 외면된다. 서서히 잠식되는 사회와, 트라우마와 고통으로 점철된 세상으로 우리의 삶의 터전이 변질되지 않으려면 개인과 집단을 끌어안은 국가가 발 벗고 나서 탄탄한 지지대와 극복을 위한 디딤돌을 마련해야 한다. 더 이상 국가가 한 명 한 명의 삶과 존엄성을 최우선으로 두지 않는 길을 걷지 않았으면 한다. 개인이 공동체 안에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고, 각 공동체가 협업하여 함께 재난의 일상화를 이겨내기 위해선 국가가 먼저 위험을 감지하고 나서야 한다. 지금이 바로 나서야 할 때이다.



#뉴스아님 #202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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