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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감미 Aug 25. 2021

페스코 베지테리언의 갈등

뉴스아님 일곱번째

필자는 학교에서 교양과목으로 프랑스어 수업을 듣고 있다. 얼마 전 수업은 여러가지 명사를 발음해보는 수업이었는데, 이 때 교수님께서 프랑스에서 유명한 음식 몇 가지를 소개해주셨다. 그 중 하나가 푸아그라(foie gras)였다. 푸아그라는 식전에 나오는 요리로서 거위의 간으로 만든 것인데 고체화된 잼같이 생겼으며 빵같은 것에 발라먹는 것이라고 한다. 세계 3대 미식 요리로 꼽히고, 유일하게 가격과 맛이 완전히 비례하는 음식이라면서 13유로 아래는 먹지 말라는 팁도 주셨다. 들어는 봤지만 어떻게 생긴 것일까 궁금해진 필자는 유튜브에 검색을 했는데, 푸아그라를 만드는 과정이 정말 잔인하다는 영상의 썸네일이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검색하기 직전, '내가 과연 프랑스에 가게 되면 페스코 채식을 지킬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필자는 유튜브 영상 앞에서 클릭조차 하지 못한 채 멈춰버리고 말았다.



얼마 전, 필자가 좋아하는 유튜버가 인스타에서 '씨스피라시'라는 다큐를 소개해주셨다. 필자가 처음 비건을 하게 된 계기였던 다큐멘터리 <카우스피라시>의 2탄 같은 느낌의 다큐였다. 카우스피라시가 축산업에 대한 것이었다면, 씨스피라시는 어업에 대한 내용이다. 필자가 페스코 채식으로 전환한 건 2월, 인턴이 끝나갈 즈음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비건을 고수하긴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살며시 이야기하자면 필자는 정말 정말 해산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나중에 부자가 되면 회와 초밥을 잔뜩 쌓아놓고 먹겠다고 외칠 만큼 말이다.



처음 다큐와 책을 보고 비건을 시작했을 때 했던 생각은, "어떤 동물은 먹고, 어떤 동물은 안먹고 이게 뭐람. 그냥 비건으로 살자"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 문장으로 시작했던 비건 생활은 시간이 가면 갈 수록, 각 식품군마다 '해야만 하는 이유'들이 문장으로 붙기 시작했다. "소, 돼지, 닭은 너무 잔인하게 사육되니까", "달걀은 그 과정에서 나오는 거니까", "우유는 소를 강제 임신 시키는 거야" 등. 하지만 이러는 와중에도 해산물만큼은 욕구를 억누를 만큼의 이유를 찾지 못했고, 더군다가 너무나도 좋아했던 터라 페스코 채식을 결심하는 데는 그닥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필자는 너무나도 소시민스럽게도 씨스피라시 다큐를 보면 페스코 채식이라는 합리화 또한 통하지 않게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는 꼴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본 후 필자의 삶의 결이 또 한번 어떻게 달라질지 정확히 예상되는 바가 있다. 이 글에서 고백컨데 작년 7월부터 비건 및 페스코 채식을 이어온 필자가 딱 한번 치킨을 시켜먹었던 일 때문이다.



#뉴스아님 #20210406



때는 한달 전 쯤. 정말로 극도로 우울한 날이었다. 괜히 짜증이 나고 몸이 축축 쳐지고 이유 없이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서 기분을 전환해야겠다고 생각했고, SNS를 통해 친구들에게 영화를 추천받았었다. 영화를 고르고 나서, 순간적으로 '치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 앞에 보이는 육류들은 먹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습관적으로 과거에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때 떠올리던 단어가 생각나버린 것이다. 엄청난 갈등 끝에 결국 생맥주까지 해서 2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새벽 1시쯤에 주문을 했다. 얼마 되지 않아 배달원 분이 오셨고 일시정지를 시켜놓은 영화를 틀고 박스를 풀어 한 조각 입에 물었다. 그런데 그 순간 펑펑 눈물이 났다. 눈 앞에 둔 닭에 대한 엄청난 미안함, 고작 순간의 스트레스를 풀자고 지금까지 지켜왔던 걸 무너뜨렸다는 것, 밀려오는 죄책감과 그 와중에 과거에 치맥을 하며 행복했던 기억 등등이 얽히고 설켜 어떤 복잡한 서러움으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채식을 그만둔다고 해도, 더 이상 고기를 마냥 맛있게 먹진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페스코 비건으로 살고 있으면서도 생선을 먹는 데 필자는 더 이상 감탄하며 먹지 못한다. 필자와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은 필자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아주 크게 감탄한다는 것을 안다. 단순히 '맛있다'가 아니라 환장하면서 맛있어한다고 해야 더 적절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제 돈주고 사먹으면서도 눈을 동그랗게 뜬다거나 미간을 찌뿌린다거나 하는 반응이 안나온다. 그냥 겸허하게 속으로만 맛있어하는 동시에 죄책감을 가지며 먹는다. 해산물을 먹지 않아야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면서도, 이것도 엄연한 개인의 욕구를 위한 살생임을 머리로는 알기에 쉬이 이를 즐기지 못하는 것이다. 필자가 '씨스피라시'를 아직 보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큐 이후의 결과는 아예 먹지 못하게 되거나, 먹으면서도 더 가중된 죄책감을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푸아그라 영상 역시 마찬가지의 이유에서 클릭조차 하지 못하고 창을 닫아버렸다.



필자가 치킨을 먹고 난 후, 다음 날이 되어 하루종일 생각한 것은 "먹는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었다.



필자가 좋아해서 자주 쓰는 표현 중 "시대를 통과하며"라는 표현이 있다. 한 사람이 어떤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 시대에서 겪은 바가 그 사람의 인생과 그 사람 자체에 영향을 준다라는 말을 하고 싶을 때 이런 표현을 사용한다. 필자는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에게 스며듦으로서 그 사람의 움직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움직임에 의미를 부여하고, 실행하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 구석구석에 그 사람의 걸어온 길이 묻어나는 것이다. 필자의 상황에 대입해보면 필자는 이미 여러 매체들을 통해 육식에 대해 보고 들은 바가 있고, 이 경험이 스며들기 전, 손 안에 두고 버리지도, 오롯이 품지도 못한 채 끙끙대고 있는 실정이다. 왜냐하면 필자 인생에 있어 "먹는 경험"은 정말 중요했고, 새로 마주한 경험은 필자가 "먹는 경험"을 하기까지 그 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먹는 행위에 대해 나의 이성은 어디까지 영향을 미쳐야 하는 건지, 나는 무엇을 위해 먹는 행위에 대해 고민하는 건지, 먹는 행위는 나의 인생 혹은 나 자체에서 얼만큼의 의미를 갖는 건지 등, 필자는 아직도 고민 중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 얘기하고 싶은 바는 명확히 없다. 그저 필자의 장황한 고해성사를 듣고, 한 번쯤은 육식을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주일에 한 끼 정돈 채식으로만 식사하자는 식의 작은 다짐도 해보면 더 좋고 말이다.



#뉴스아님 #20210406


#뉴스아님 #2021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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