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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뉴 Feb 18. 2019

흘릴 땐 흘려줘야지

어느 고3의 눈물

어쩐지 어제 분위기가 이상했다. 원래도 잘 조는 친구이긴 하지만, 어제는 특히 더 많이 졸았다. 뿐만 아니라 어제는 아예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왜 그럴까’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나의 행동은 이미 그보다 빨랐다.      


“아, 그만 졸아.”     


평소대로라면 굉장히 밝은 목소리로 대답을 “네”했었을 텐데,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 대답하지 마.”     




듣자 하니, 오전에 예배를 드리러 갔을 때 아빠랑 엄마랑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그 아이의 말은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 대한 그리움, 선택 후 자연스럽게 생기는 두고 온 것에 대한 후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하진 못한 꿈, 결정적으로 체력적인 부담감까지. 자신의 인생에서 이만큼 힘들었을까 하는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인정한다. 우리와 함께 지내는 아이들은 무척이나 힘이 든다는 것 나도 잘 안다. 그런데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잘 몰랐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도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더욱 자세한 이야기가 오고 갔을 테지만 더 이상은 묻고 싶지 않았다. 때로는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몰라야 할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고3에 올라가는 여학생이다. 부모님 상담과 아이 상담을 동시에 진행한 결과 자퇴를 결심하고 대안교육으로 방향을 바꿨다. 운전을 해보시는 분이라면 급격한 유턴은 사고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은 더욱 그렇다. 관성이라는 이상한 습성을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사람은 가던 길을 갑자기 바꾸어 버리면 부작용이 일어난다. 잘 버틴다 싶더니, 결국 그 아이에게 고비가 찾아왔다.

      

괜찮다. 어차피 한 번쯤은 넘어가야 한다. 자신이 다니던 학교를 계속 다녔다면, (미안한 말이지만) 진로는 가능성이 없었다. 그 상태에서 상호 협의 하에 자퇴로 방향을 틀고, 대안과정을 선택했다. 여기서 선택 후 집중은 자동차 엑셀레이터를 세게 밟듯이 밟아줘야 한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과정은 단순해지지만 따라붙기 위해서는 엄청 힘들다. 그 아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현실이 너무 힘이 드니 엉엉 울었던 것이다.


카메라를 들고 매번 한강을 찾아갔던 이유는 모두 같았다.


얕은 산도 넘어본 사람이 잘 넘을 수 있다. 하물며, 자신의 인생 앞에서 거대한 산을 넘으려는 그 아이에게는 불가능한 도전일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버텨왔던 인내심과 결심이 흔들릴 때, 아마 엉엉 울었으리라. 괜찮다. 지금까지 그렇게 울었던 사람은 많다. 나도 그랬고,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도 그랬다. 성공한 사람들도 한 번쯤은 다 겪고 넘어갔다. 누구나 다 겪는 일이라고 당연스럽게 말하는 기성세대가 되고 싶지는 않다. 아이들의 페이스메이커로서, 그 아이가 나중에 잘 떠나길 바라는 입장으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부터는 쉽다. 그리고 세 번, 네 번, 그 이상이 되면 재미도 있다. 실컷 우는 게 도움이 된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고,
한 바탕 시원하게 쏟아낸 눈물은 자신의 발밑을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마음을 잘 추스른다면 한결 더 발걸음이 가벼워질 것이다. 그리고 또 거대한 벽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또 눈물을 흘릴 것이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발걸음은 결국 정상에 다다를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하나의 산을 넘게 될 것이다.


'아, 언제 오르지' 하면서도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다 보면 정상에 도착해 있다.

혹시 급격한 변화로 몸부림치는 누군가 있는가. 그래서 눈물이 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 계속 가라.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지만, 어차피 한 번 흘릴 눈물이다. 지금 다 쏟고 마음을 추슬러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가라. 하고자 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 앞에서 포기란 있을 수 없다.




오늘 아침 다시 만나는 그 아이의 모습은 어떨지 정말 궁금하다.      


괜찮아, 그냥 실컷 울어. 나도 울었고, 저기 계신 선생님들도 다 울었어.
난 어제도 울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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