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함과 알량함의 전부
한 차례 대학 초기의 위기를 잘 극복한 뒤,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게 되었다.(이 위기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나온다.) 오해는 시간이 지나면 풀리게 되어 있고, 진실 역시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라는 사람의 진가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 틈에서는 나는 그동안 반짝이지 못했던 것들을 마음대로 발산할 수 있었다. 끝내 ‘인싸’는 되지 못하였지만, 주변 변두리에서 이만큼이나 접근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당시 나는 몹시 기뻤다.
MBTI로는 I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나를 반짝이게 했던 것은 외려 사람이었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나는 빛이 났다.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어느 한 리더의 강력한 지지자가 되어 리더의 목표를 이루어 낼 수 있게 도와주었다. 간혹 생기는 갈등에 대해 강하게 대처하는 편이고, 불의와 정의에 벗어나는 것들에 대해 싸울 수 있는 용기도 있었다. 이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나는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참 안타까운 이야기인데, 집에서나 학교에서 한 번도 빛나 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 다시 말해 나를 제대로 봐준 사람이 없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 대학까지 와서 골목부대장 놀이나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를 반짝이게 했던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은 그 친구들이 뛰어났음을 철저히 인정한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내가 그들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그런 식의 관계가 지속되니 나는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이 되었다. 웃기는 소리이긴 하지만, 부모가 없어서 거의 내 힘으로 대학을 다녔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통신비도 자기 힘으로 못 내는 철없는 친구들을 보니 얼마나 우스웠겠는가. 그러니 그들을 만나는 시간은 전부 내가 빛나는 시간이었다. 이런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상대방이 먼저 손절을 치거나, 내가 시시해서 포기한다. 당연히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내가 얼마나 재수 없었겠는가. 경험의 양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다니.
다행히도 졸업 전에 깨닫게 되어 지난날을 이야기하며 자조 섞인 웃음도 짓고 사과도 했다. 그들이 큰 사람이었다. 그들이 나를 알아봐 주고 성장시켰다. 의도였던 아니던, 그들의 성품과 성향이 나를 품게 해 주었고, 충분히 그 안에서 빛나게 해 주었다. 꺼지지 않는 지옥 불 아닌 이상, 에너지를 다 소비하면 꺼지게 되어 있다. 자만심, 자부심의 역한 것들을 가지고 나를 들여다보고 반성하기 시작하면 금방 깨닫게 되어 있다. 내가 얼마나 유치하고 알량한 것들로 살았은 지를.
이젠 나를 반짝이게 하는 관계는 없다. 내가 어느 모임을 가던, 나는 그들보다 잘 나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그렇게 시작해야, 좋은 방향으로 모임이 유지될 수 있다. 그렇게 해야 갈등이 최소한으로 끝이 날 수 있다. 일종의 삶의 지혜가 되었다. 나는 내 안에서 얼마든지 반짝이고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기대어 빛나는 것을 기대하지 마시길 바란다. 그렇지 않아도 빛이 나는 사람은 다 알아봐 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