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사이

by 이뉴

가족은 참으로 좋은 존재다. 내가 실패하고 돌아와도 무조건 따뜻하게 맞아주는 존재들이다. 자녀의 범죄 사실 앞에서도 고민하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형제자매가 아무리 치고 박는 존재라도 없으면 허전하고, 외로움을 느끼는 게 혈연이다.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이기적인 마음이라서가 아니라, 가족은 그 자체로 소중하고 귀하다. 내가 그들에게, 그들이 내게 사랑을 주고, 걱정을 하고, 알게 모르게 신경을 쓴다. 분명히 친구와는 다른 영역이다.


그래서 그런지 말할 수 없는 게 더욱 많다. 나의 고민과 걱정들이 가족 내에서 공개될 때, 가족 구성원들이 걱정하고, 신경을 써야 하는 게 생기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존재들도 삶을 영위하기 힘든 오늘날 같은 시기에, 이런 나의 고민과 걱정을 나누는 것조차 부담을 느낄 때가 분명히 있다. 그들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피차 서로 간에 발생하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나도 그렇다. 어릴 적부터 착한 아이로 살아야 했던 나는 그 누구에게도 잘 말하지 않았다. 아픈 동생을 케어하고 있는 엄마에게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까지 보탤 필요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친구도 그랬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그는 덤덤한 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어 놓았다. 다른 친구 역시 그렇다.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사람같이 보였는데, 그 내면에는 자신의 고민과 염려가 가족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 같은 마음이었다고 했다. 친구라서 때로 이런 모습에 몹시 마음 상할 때가 있지만, 충분히 이해되는 일들이라 금방 가라앉는다.




하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풀어갔어야 했다. 우물쭈물 거리며 보낸 시간 속에는 두꺼워진 벽이 생겼고, 그 벽을 기준으로 어색한 사이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나름 배려하고 생각해 준다는 명목으로 묵인하고 넘어가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다른 가족 구성원 역시 내게 그랬다. 이것은 나의 성장만 막는 게 아니라 가족 전체의 성장을 저해하는 방법이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오늘도 말하지 못한다. 그것이 사랑인지, 동정심인지, 연민이지 모르는 그 중간 어디쯤 감정 때문에. 그 지독한 감정 때문에, 뭐라 표현할 길 없는 그 혈연관계 때문에, 나는 오늘도 많은 말을 꿀꺽 삼키며 하루를 시작한다. 대나무 숲에 가서 아무리 외쳐 본들, 그 소리는 내 귀에 다시 꽂혀 버린다. 윙윙 거리며 맴도는 그 말을 속 시원하게 내뱉지도 못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에는 어딘가 모르게 처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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