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을 다닐 때 연초가 되면 부서 직원들의 공통 관심거리가 있었다. 우리 부서가 조직개편이 될지 아니면 전년도와 같은 조직으로 유지될지였다. 회사 내 그룹웨어를 통해 공지되기 전에 상사나 동료 직원들로부터 전해지는 조직개편에 대한 소문은 업무시간이나 퇴근 후 회식 자리에서 다루어지는 화젯거리 중 하나였다.
부서 조직개편의 경우에는 무소식이 희소식이었다. 부서가 별다른 소문 없이 조용하다면 조직개편이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소문은 회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을 때 주변 직원들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20년 전에 중견기업을 다닐 때였다. 우리 회사는 직원 수가 7백 명이 넘었고 직원들 다수가 파견 근무를 했기 때문에 직원들은 회사의 경영 상황을 알기가 어려웠다. 경상 상황을 알기가 어려우니 회사 경영에 책임을 지고 있는 경영진이 조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알 수 없었다.
2월이 지나 3월이 되었는데도 우리 부서는 조용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가 먼저 소문을 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부서에 조직개편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번에 부서장이 새로 온다네요"
앞자리에 앉아 있는 A대리가 말했다. A대리는 누구한테 전해 들은 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본사로부터 새로운 부서장이 오고 현재 부서장은 본사로 복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서 내에는 '누구누구는 이곳에서 계속 일하게 되고 누구누구는 본사로 복귀한다더라'와 같은 말이 퍼져 갔다. 이렇게 되자 부서 직원들의 관심은 본사로 복귀하게 될 거라는 직원들에게 향했다.
우리 회사는 전산시스템 개발이나 운영을 주요 업무로 하는 회사로서 파견 근무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운영 직원의 경우에 주로 고객사의 IT실(전산실)에 파견 근무했다. 만약 고객사 IT실의 조직개편으로 인해 본사로 복귀하게 된다면 일단 업무가 주어지지 않고 대기하면서 어느 근무지로 파견 나갈지 기다려야만 했다. 즉, 본사 복귀란 앞으로 어떤 근무지로 가게 될지 알 수 없는 부담감이 있는 일이었다. 자칫 운이 없으면 업무강도가 높고 근무시간이 길며 불규칙한 개발팀에 가게 될 수도 있었다.
"실력이 출중하던지, 아니면 연줄이 있던지"
A대리는 푸념 섞인 말투로 말했다. A대리나 나 같은 대부분의 평범한 회사원들은 실력이 출중하지도 연줄이 있지도 않았다. 상사로부터 지시받은 일이나 본인에게 맡겨진 일을 묵묵히 할 뿐이었다. 고객사 직원들과의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말이다.
실력이 좋아서 고객사 직원들로부터 꼭 필요한 직원으로 인정을 받으면 본사 복귀를 하지 않고 계속 고객사 IT실에서 일할 가능성이 높았다. 고객사가 요청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회사 인맥을 통한 연줄이 있어도 계속 일할 가능성이 높았다. 예를 들어 회사 실세와의 친분이 있다면 실세의 힘이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사 복귀를 원하지 않는 대부분의 우리 부서 직원들의 바람과는 달리 시간이 보름쯤 지나자 소문대로 새로운 부서장이 본사로부터 발령받아 왔다. 그 부서장은 본사로 복귀해야 하는 직원들과 면담을 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한 해 동안 부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 팀에서도 본사로 복귀해야 하는 직원이 있었다. 그는 입사동기였는데 본사 복귀 후 다른 부서로 부서를 바꾸었다. 그다음 해에 나도 그와 같은 전철을 밟았다. 그리고 수년 후에 그와 나는 퇴사를 했는데 지금도 만나면 그때의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눌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