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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이와 지덕이 Jul 31. 2024

초보 평가위원의 평가 경험기

연초가 되어 정부 부처들이 연구개발(R&D) 지원사업을 공고하면 많은 중소기업들이 관심을 갖는다. 이러한 사업들 중에서 수억 원 이상지원사업을 중소기업이 수주하여 수행하게 된다면 회사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내가 재작년까지 일했던 회사는 매출이 적고 직원수가 10명이 안 되는 중소기업이었다. 회사는 고가(高價)의 3D프린터를 판매하는 회사인데 업계의 시장 상황이 좋지 못해서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다.


사는 자금 여력이 없었고 정부지원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계획하고 있는 아이템에 대한 사업계획 적극적으로 신청했다. 하지만 정부지원사업의 높은 경쟁률 때문에 번번이 떨어졌다. 회사의 대표는 회사 여건 상 직원들에게 월급을 적게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업무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부업을 할 수 있으면 하라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정부지원사업에 관련된 평가 관련 기관의 평가위원으로 활동할 기회가 생겼다.




평가 관련 기관의 신청 사이트를 통해 평가위원으로 등록한 후 위촉된 것은 4년 전이었다. 평가위원은 정부지원사업을 신청한 회사들의 사업계획서를 평가하여 사업을 수행할 회사를 선정하는 일을 다.


위촉된 지 수개월이 지나자 기관 담당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위원님. 이번 사업에 평가위원으로 참여 가능한지 여쭤보고자 전화드렸어요"


수억 원 규모의 정부지원사업의 경우 서류평가와 대면평가를 하여 수행할 회사를 선정한다. 나 평소에 대면평가에 어떤 사람들이 평가위원으로 오는지 궁금했었다. 또한 평가위원을 한번 경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기관 담당자에게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평가일이 되었다. 기관 담당자가 알려준 대로 서울에서 KTX를 타고 대전에 있는 평가장으로 출근했다. 평가장은 평가기관 건물 내 3층에 있었다. 그곳에는 이미 여섯 명의 평가위원이 도착하여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대학교수, 회사 대표나 임원들이었다.


기관 담당자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대면평가 대신에 온라인 비대면평가를 한다고 말했다. A회사부터 G회사까지 7개 회사가 비대면평가 대상이었다. 그는 신청한 순서대로 회사의 사업총괄책임자가 사업계획의 내용에 대해 온라인 동영상을 통해 발표한다고 말했다. 이후에 평가위원들이 발표한 내용에 대해 질문하고 사업총괄책임자가 답변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질의응답은 회사의 사업총괄책임자와 전화 통화로 한다고 말했다.


평가가 시작되었다. 사업계획서와 발표자료들은 보안 관계상 평가일에 평가위원들에게 제공되었다. 그런데 내가 처음 해보는 것이라 그런지 자료들을 검토하기에 시간이 빠듯했다.  


"위원님들 모두 한 가지 이상 질문하셔야 합니다"


기관 담당자가 말했다. 발표할 회사들의 질의응답시간에 평가위원들이 질문을 적게 하면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든 평가위원들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질문을 하라는 것이었다.


'발표내용 들으며 평가항목별로 점수 매기는 것도 시간이 빠듯할 것 같은데 질문할 것까지 생각해야 하네'


골치가 아파왔다. 하지만 평가기관 입장에서는 평가위원들에게 적지 않은 평가수당을 주는데 쉬엄쉬엄 일하게 할 것 같지 않았다.


평가가 시작되었다. 평가 'XXX를 위한 소프트웨어 플랫폼 기술개발사업'을 수행할 회사를 선정하는 것이었다. 기관 담당자는 첫 번째 발표하는 A회사의 사업계획 발표 동영상의 시작버튼을 클릭했다. 동영상 속의 사업총괄책임자 발표가 끝날 때까지 A회사에 대한 점수를 매기고 질문할 내용을 생각해야 했다.


내 머릿속에는 기술적인 질문 외에 떠오르는 내용이 없었다. 내가 과거에 다녔던 회사에서 했던 일들 생각했다.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관련해서 사용해 보고 들었던 것들을 머릿속에서 생각해 내었다.


A회사의 발표 시간이 끝나고 평가위원들이 질문할 시간이 되었다. 평가위원 한 명씩 돌아가면서 질문을 했다. 내 차례가 되었다. 조금 전에 머릿속에서 생각해 낸 내용을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소프트웨어 플랫폼 개발 시 귀사에서 제시한 기술을 활용해 어떻게 품질이나 생산성 향상을 할 수 있을까요?"


A회사에게 질문했다. A회사의 사업총괄책임자는 내 질문에 미리 대비한 듯 자연스럽게 답변했다. 나는 그 순간 생각이 났다.   


'이 질문을 아직 발표하지 않은 6개 회사의 질의응답 시간에 똑같이 질문해도 될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B회사의 사업계획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다른 평가위원들이 B회사에게 어떻게 질문하는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A회사에게 했던 질문을 B회사에게 그대로 동일하게 질문하는 평가위원은 아무도 없었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B회사에게는 A회사와 다르게 질문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B회사의 사업계획서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 질문할 내용을 찾아내서 A회사의 질문내용과 다르게 B회사에게 질문했다.


이런 식으로 6개 회사의 질의응답 시간에 각 회사의 사업계획서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질문내용을 생각해 내어 다르게 질문했다. 그러다 보니 내 머리가 피곤해졌다.

 

마지막 일곱 번째 회사인 G회사의 사업계획 발표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G회사의 사업계획서를 뚫어져라 쳐다봐도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떠오르는 내용이 없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내 눈에 G회사의 사업총괄책임자가 대학생 때 나와 같은 산업공학을 전공하였다것을 발견했다. 왠지 반가웠다. 


G회사의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다. 내가 G회사에게 질문해야 하는 순서가 되었다. 무슨 내용을 질문해야 할지 멈칫하다가 내 입에서 갑자기 'G회사의 사업총괄책임자님은 산업공학을 전공하셨는데 조금 전 발표하신 내용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보시나요?'라는 질문이 나왔다.


질문한 내용은 소프트웨어 플랫폼 기술개발사업과 별로 관련이 없는 애매모호한 질문 같았. G회사의 사업총괄책임자는 예상외의 질문에 약간 허탈해하는 말투로 답변을 했다.


예전에 우리 회사가 정부 R&D 지원사업 대면평가를 받을 때 한두 명의 평가위원으로부터 사업과 별로 관련 없는 질문을 받았다고 우리 회사 직원들이 어이없어하는 반응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평가위원 입장이 되어 보니 평가위원도 실수나 경험 부족으로 그런 질문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 7개 회사의 발표가 끝났고 평가위원들의 마무리 회의가 끝났다. 그리고 사업을 수행할 회사가 선정되었다.


생각해보니 G회사에게 사업과 별로 관계가 없는 질문을 한 것 같아 미안했다. 아내가 나에게 늘 어땠냐고 물어봤다. 나이와 경력이 쌓이다 보니 평가위원을 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평가위원으로 대면평가를 해 보는 것이 처음이라 그런지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  평가위원으로서 첫 대면평가를 경험한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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