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나는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당시에 친하게 지내며 자주 만나던 후배가 있었는데 그는 아직 대학교 4학년 학생이었다. 그는 내가 대기업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가서 회사생활을 시작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종종 내가 다니는 회사의 급여는 어떻냐 회사 분위기는 어떻냐는 등을 물어봤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경기도 이천에 있었다. 우리 집은 서울에 있었는데 직장까지 다니기가 너무 멀었다. 출퇴근 시 이용할 수 있는 통근버스가 있기는 하나 매일 다니려니 피곤했다. 다행히 회사에 기숙사가 있었고, 나는 평일에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직장과 숙소만 오가는 나의 생활은 단조로웠다. 그래서 가끔씩 퇴근 후 대화가 통하는 그를 만나러 통근버스를 타고 서울에 사는 그의 집에 갔다. 그리고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보냈다. 그와 나는 4살의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대화가 통했다. 그가 나와 함께 이야기할 때의 주된 주제는 종교, 회사, 학업, 가족 그리고 여자였다.
1990년대에 PC통신이 유행했다. 내 주변의 청년들 중에 PC통신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등을 통해 자료를 찾거나 채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국내에 인터넷이 활용되기 시작했지만 지금과 달리 속도가 느려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PC통신도 속도는 느렸지만 여러 가지 장점이 있었다. 그중에서 한 가지를 말하자면 대화방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채팅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와 나는 청년이었고 이성(異性)과의 만남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나이가 20대라 그런지 만남 타깃은 주로 20대 여대생이나 대학원생이었다. 그런데 그의 PC통신 채팅을 통한 만남시도의 성공률은 높지 못했다. 서로 모르는 청년들이 있는 온라인 대화방에서 짧은 시간 채팅을 통해 오프라인으로 만남을 유도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성 만남에 대한 관심은 그가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계속되었다. 공대 대학원생들은 지도교수 밑에서 연구실(Lab) 생활을 했다. 그는 연구실에 아무도 없을 때 나를 연구실로 초대하였다. PC통신 천리안에 접속해 대화방에서 여자 청년들에게 채팅을 시도했다. 만남을 위한 시도가 실패할 때가 많았지만 가끔 성공할 때가 있었다.
만남시도가 성공하면 그는 나에게 오늘 한 건 했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채팅한 여자와 약속시간과 장소를 정했다고 나에게 알려줬다. 천리안 채팅방에서의 만남 약속은 서로 본 적이 없는 사이이므로 서로 간에 인상착의와 시간 및 장소를 정확히 알려줘야 했다. 예를 들면 몇 월 며칠 몇 시에 숙대입구역 몇 번 출구에 상의와 하의 그리고 신발까지 옷차림이 모두 까만 여자가 서 있으니 만나러 오라라는 식으로 약속을 잡았다. 채팅 때 상대편 여자가 수락해서 만남을 갖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었으므로, 우리는 만남을 가질 여자가 한 명이든 두 명이든 세명이든 관계없었다. 우리는 여자들과 대화하고 식사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어떤 여자들과는 대화 분위기가 좋아서 여자들과 2차로 노래방에 가서 노래 한 곡씩 부른 적도 있었으나, 어떤 여자들과는 카페에서 차만 마시고 헤어진 경우도 있었다. 그는 나와 달리 여자들 앞에서 말을 잘했다. 분위기를 주도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러한 만남은 일회성으로 끝났다. 애프터 만남이 이어지지 못했다.
PC통신을 통해 결혼까지 이어졌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었으나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만남이 가볍게 이루어진 만큼 그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성과의 만남은 재미없는 직장생활이나 학업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소소한 즐거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