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공범으로,

투쟁하는 이에게 보내는 장

by 이닻

당신은 연민을 빌미로 나를 꾀어낸 적이 없다. 그것이 내가 당신에 대해 가장 명료하게 증언할 수 있는 전부. 내가 한 번도 당신을 안쓰러워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마음이 동한 이유에 내가 당신을 구제해 주리란, 그리 할 수 있으리란 알량한 결심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오히려 다른 누군가를 구제하는 사람에 가깝다. 목숨을 건지는 일에도 망설임이 길었던 나에게 그냥 저질러버리라고, 종용하던 사람. 핏물이 튈지, 죽어가던 생명의 심장에 숨구멍을 뚫을지 모를 일이라고. 참 쉽다고 나는 탄복했다. 패전의 경험이 많지 않았던 나의 눈에 당신은 무척이나 무모해 보였으므로. 그것은 수년간 치열하게 저질러 본 당신의 무용담이었다.


하지만 당신이 다루는 건 불이야. 불. 투지가 부족해 투정이 되기 십상인 반박은 아무 짝에 소용없으리란 것을 알았다. 쉬지 않고 불을 피워 온, 내가 글을 쓰듯 불 피우는 일을 대하는 당신에게라면야.


처음에는 작은 모닥불이었다. 거기서 일부를 떼어 횃불 삼았고, 그다음에는 화염 방사기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화살처럼 날 선 오해가 수두룩 날아와 꽂히기 시작했지.



❝ 위험한 사람이야. 반드시 누군가를 해치고 말 거야.



누군가의 미움을 사는 일, 살다 보면 너무 빈번해서 별 문제도 아니라고 했었잖아. 그때는 왜 젖은 나무처럼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어. 미움을 퍼 나르는 입은 애정하는 마음보다 훨씬 부지런했다. 당신이 읽기 전에 모조리 태워버리고 싶었는데.


단연코, 화염 방사기는 위험하다. 불이란 분명 나쁜 마음에 옮겨 붙어 공격성을 띌 수 있다. 그럼에도 당신은 예나 지금이나, 모닥불을 피우는 꿈만을 꾸고 있었다. 이왕이면 더 크고 뜨거운 모닥불을 이루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곁에 모여 앉을 수 있도록, 손발이 얼어가는 사람들을 향해 불꽃이 더 빠르게 번질 수 있도록.


전쟁 이후 황폐해진 황무지 마을을 되살리기 위해 매일같이 도토리를 골라 심었다는 어느 한 노인의 이야기처럼. 그 참나무들이 수십 수백 년을 살아남아, 결국 거대한 덩어리 터전이 된 것처럼.


삶에서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나무 심기를 하고 있다. 그 사람의 도토리는 불덩이였을 뿐이다. 알아. 내가 안다고. 안다니까. 어느 날에는 그렇게만 빼곡한 편지를 쓰고 싶었고.


나는 마음에 관하여, 당신은 사회에 관하여 잠꼬대를 나누던 새벽, 참, 내일은 꼭 잊지 말고 편지를 부치자고 했지. 고통의 거주권을 온전히 따내기 위해 이웃들에게 돌리는 편지였다. 서로 이웃은 아무래도 좋으니 들여보내주세요-자청하는 편지. 답신은 그다지 올 일이 없지만. 서로의 빈 우편함을 종종 열어보았으므로 알았지.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이 든 사람치고 너무 텅텅 비어있어. 너무 많은 이들을 이웃 삼은 것치고 우리에게 친구가 몇이나 있어.


한탄하는 밤이 길어지면, 밖이 빨리 밝아오기도 했다. 오늘과 내일을 걸쳐 사는 것만큼 빛을 앞당기는 일도 없을 거야. 나는 우리가 이 부족한 자족을 언제까지고 지속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누추한 세월을 근근이 아껴 가며, 쉬지 않고 걸어왔노라고 고백할 수 있겠지. 내가 해한 것은 오직 내 다리뿐이었다고, 절룩대는 당신이 그제야 발언하겠지.


텅 빈 광장을 가로질러, 사랑스러운 공범으로 당신은 온다. 얼어 죽다 살아난 사람들의 어깨에 업혀 절뚝절뚝 걸어온다. 웃는 듯 마는 듯 눈부신 동공, 사선에 선 나의 왼뺨을 적시는 빛의 모양과 같고. 그런 의미에서 우린 서로에게 무엇이 되었건 궁극적으로, 함께야. 얼굴에 빛 드는 방향이 같은 동안에. 우리의 이유가 기어이 변하지 않는 동안에.


삶은 변하지 않을 거야. 볕 드는 곳이라고 죽음이 끊길 일은 없을 거야. 끝도 없이 애도하겠지. 반짝이는 몇 개의 우울을 마지못해 행복이라 이름하겠지. 그러나 세상은 변할 거야. 대신 이 삶의 가치는 변하지 않아. 서로의 혼란에 인접한 채, 잠이 덜 깬 사람들처럼 흐린 눈을 연신 비벼댈지라도.



❝ 위험한 사람이지. 반드시 누군가를 살리고 말 사람이거든. ❞



나중에 당신 자신에 대해 증언해 달라고 했던 모든 말들을 적어둔다. 속도 없이, 유언이 쌓여 가는구나. 당신이 그 어떤 불안쟁이들처럼 죽음과 씨름하지 않고, 삶 그 자체와 대면하고 있다는 증거이려나.


점점 길어지는 그림자가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빛 아래 모든 부끄럼이 발각되는 그날, 그때에는 정말로 당신의 결백만을 변호해야지.


그럼 이만, 줄일게.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