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 생긴 걸 축하해,

동생에게 보내는 장

by 이닻

이리될 줄 알았다. 기쁘기도, 못내 슬프기도 해. 보아하니 떠나는 사람보다는 떠나보내는 사람이 훨씬 미련한 법이구나. 나는 너에게 늘 전자였으니까, 이번만큼은 네 조언이 필요할 성싶다.


일전에 엄마는 너를 나에게 보내면서도 눈물지었다. 애기가 어떻게 그 먼 곳까지 가냐면서. 자신이 어른이라고 믿어야만 깰 수 있는 세계가 있는 것인데. 애를 어른으로 만들어 떠나보내는 이 앞에서는 이제 다 큰 너도 별수 없이 아장거렸나 보다.


나는 울지 않아, 너도 알겠지만. 내가 그리 다정한 언니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발맞춰 걷는 것을 좋아하는 너에게 언제나 앞서 걷는 언니였고, 울음의 모양을 봐달라는 너에게 울음의 이유를 설명하는 언니였고, 꼭 붙어있자 대충 약속하고는 금세 잘 있어-하며 가벼이 깨버렸으니, 실시 네가 바라는 종류의 다정은 내게 없었을 테다.


그러면서도 내 오라는 한마디에 비행기를 타고 10시간 남짓을 날아왔던 너였으니, 나는 이번에도 네가 또 다른 나라를 감히 선택할 줄, 네가 그렇게 한 뼘 더 용감해진 줄 짐작했다. 이 길이 네 유일한 미래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했지만 말이야, 나는 그저 네가 다른 선택지를 기꺼이 발굴하기를 바랐다. 그래도 될 만큼 너는 자랐으니까.



❝ 운동선수를 하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들겠지?



다시는, 무언가를 지레 포기할 생각 말고. 고민하던 네 나이가 열여섯이었다. 그따위 걱정은 나만 하는 줄 알았지. 너에게까지 옮아갈 병이 아니었는데. 혹 네가 나 몰래 네 일부를 포기할까 봐 종종 근심하곤 했다. 사고 싶은 옷은 잘만 사면서, 돈이 많이 드는 미래가 따로 있다는 사실은 어쩌다 깨닫게 되었나 모를 노릇이었다.


돈은 얼마든지 들어도 돼. 그러니 가족들 비행기 태워줄 생각으로 승무원을 꿈꾸지 말고, 가족들 호강시켜줄 생각으로 호텔리어를 꿈꾸지 말고, 꾸준히 안정적인 직업으로는 역시 선생님이 좋지 않을까-스스로 속여 넘기지 말고. 네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했던 말. 귀하게 퍼올린 마음 다 녹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될 만큼의 돈은 내가 벌겠다고, 했던 또 하나의 약속. 그것도 내가 함부로 버렸지. 봐, 결국 나도 나를 위해 너를 포기하는 셈이다.


더는 나를 너무 철석같이 믿지 말라는 소리야. 빠른 보폭으로 걷는 내 팔을 쥐고 다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 만큼, 내 삶의 방식에 흠집을 낼 수 있을 만큼, 어쩌면 조금은 울게도 할 수 있을 만큼, 네가 어엿해졌기 때문이다. 어른이라고 착각해도 좋을 만큼 그럴듯해졌기 때문이다.


너는 이제 내가 너를 믿는 만큼은, 네 스스로 믿어주어도 좋겠다. 칭찬도 질책도 전부 네 가방에 바리바리 싸들고, 새 여정에 올라타도 괜찮겠다. 이것이 우리 둘 모두의 어리숙한 착각이 된다 할지라도, 그 정도는 가뿐히 저질러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남들에게 편지 적을 때에는 되려 솔직해지건만, 너를 향한 글은 이리도 인색하구나. 서툴어서도, 불온해서도 아니라는 것만을 필히 주장할 뿐이다. 네 빈자리가 견딜만한 것을 보니 그러길 잘했지. 우는 소리 하는 언니는 정말이지, 되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다.



❝ 언니 옆에 있으면서 불안해하지 않는 법,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많이 배우고 가.



네가 써주고 간 편지는 그새 살짝 번졌다. 그래도 잘 읽히니 걱정 말고, 잘 다녀와. 그간 나는 조금 불안해하는 사람이 될지도 몰라.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도 가끔 잊을지 몰라.

그러나 너의 흔들림에 관해서라면, 언제든 두렴 없을 각오가 되어있다. 네가 어느 하늘에서 뚝 떨어져도 받아낼 곳에 뒤처지지 않고 머물러 있을 테니, 겁 없이 무게를 달아볼 수 있길. 믿지는 않되, 잊지는 마라. 나는 항상 여기 네 지척에 있어.


기별하렴.

미래가 생긴 걸 축하해.


그럼 이만, 줄일게.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