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하게 될 인연에게 보내는 장
쓰고 싶지 않았던 마음을 미리 밝혀 둔다. 내가 정해둔 결말을 끌고 당신에게 왔다고 오해할까 싶어. 그러나 써야만 하니까. 말버릇처럼,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을 당신은 물론 이해할 수 없다. 혹여 당신이 풀리지 않는 궁금증을 집요하게 파헤치다 무어라도 실마리를 찾아내기 전에, 나는 가차 없이 자취를 감출 테니까. 당신이나 나나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라서, 무섭다.
당신은 하필 내 나쁜 부분을 닮았다. 내 우울을, 고독을, 복잡함을, 뒤엉킨 심연을 닮았다. 나는 내가 보여주지 않은 모습을 알아보는 사람에게 너무도 약해. 나의 얕은 언어가 시린 겨울 시냇물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차가운 성질을 타고난 당신은 아무렇지 않게 걸음을 들였다. 그 온도가 아무것도 겁주지 못한 탓에, 끝도 없이 대화가 이어졌지. 추운지도 모르고 마구잡이로 서로를 벗겨내리는 대화였다.
❝ 왜 나를 선택했어? ❞
❝ 당신이랑 나눈 이야기들이, 유일하게 진짜 같았어. ❞
혼잡한 어둠 속에 기대어 서있던 당신을 그때 포기했더라면. 아무도 필요하지 않고, 곁에 둘 생각도 없다고 밝힌 나와 당신 사이의 거리가 어느새 너무 좁았다. 차라리 거짓을 말할걸. 당신을 알아가는 일이 내 잠들어있던 고유성을 일깨운다는 속마음 따위 뱉지 말걸. 당신 때문에 별다른 개연성도 없이 내 계획이 틀어진다는-나의 불확실성이, 망설임이, 해묵은 매너리즘이, 냉소로 단련된 아집이, 걷잡을 수 없이 비어져 나온다는-고해 따위, 성사되지 않았더라면.
나의 어떠한 일부도 속여 건넨 적 없었다는 말을 믿어?
방금 그 말 도대체 무슨 의미냐고, 묻지만 이미 나를 알잖아. 당신은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내 입에서 꺼내가고 싶을 때마다 일부러 묻곤 했다. 설명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제 식대로 해석하는 과정에 가깝다. 나로서는 철저히 청자의 몸인 것이 마냥 좋기도 했어. 당신이 재잘거리는 소리를 몇 시간씩 듣다가, 간헐적으로 장난처럼 딴지를 걸고, 또 한동안 맞장구를 치다 보면, 말이 너무 많았다며 머쓱해지는 당신을 끝으로 대화를 마무리하는 일-나에게는 더없이 이로웠으므로.
괜찮을 줄 알았어. 우리는 너무 진짜여서 가짜 같은 이야기만 공유해 왔으니까. 거짓말, 거짓말. 우리는 서로에게 믿을 수 없는 존재들이었으니까. 이것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거짓말. 하물며 음식 하나도. 이것까지 삼킬 수 있다고? 당신, 이런 나도 진짜 괜찮다고?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야.
다를 줄 알았지. 말하자면 이것은 서로에 대한 오해이기보다, 우리 자신에 대한 근본적 오류에서 시작되었다. 실망했다거나, 그런 감정의 언어로는 기록하지 않는 게 좋겠어. 우리는 이 와중에도 무언가를 새로이 배웠다는 사실에 조금은 들뜨는 괴짜들. 예상과는 다른 결괏값을 두고 꽤나 다정한 토론을 벌이다가, 이내 단호히 돌아서서 각자의 길을 갈 테다.
끝까지 네가 틀렸다고는 말하지 않는 태도가, 우리에게는 사랑일 수 있겠지.
얼얼하게 남을 작별은 '고통'이 아닌 '맛'의 일종. 마라탕 같은 거라고 표현하면, 웃어줄래? 나는 혼자 웃기 싫어서 글을 쓴다. 당신도 나에 대한 그림을 그릴까. 내가 당신을 재료로 이렇게나 탄내 나는 글을 볶는 동안. 밤새 혼자만의 취미에 몰두하는 방식으로 누군가를 지극히 생각하는 아이러니. 다음날 아침에도 자기 자신으로 살아남아 서로를 껴안으러 가기 위해 우리는 지난밤 그토록 치열하게 악몽에 뒤척였다.
이 괴상한 overthinker야. 푸석한 얼굴들을 매만지며, 사랑한다는 말 대신 징그럽다고 생각한다.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 생존해 온 부류의 유머 코드. LOL, LMAO보다 더 왁자지껄 웃을 순 없을까. 왜냐하면, 나는 우리의 징그러운 모순을 이만큼이나 사랑하거든.
각자의 작품이 저 닫힌 문에 다다르기 전에는 완성됐으면 한다. 서로의 다름을 나누어 가지는 일, 운명처럼 통하는 같음을 발견하는 일만큼이나 특별하니까.
❝ 나는 네가 네 원하는 곳으로 떠나서, 다시는 날 마주칠 일이 없었으면 해. ❞
우리는 에어컨도 없는 차를 타고, 40도를 웃도는 여름을 낮부터 밤까지 자꾸만 내달렸다. 그날의 주제는 '새'였다. 내가 나는 법에 대해 말하는 동안, 당신은 둥지를 트는 법에 대해 말하던. 잔뜩 달궈진 낭만에 몇몇 중요한 단어들이 종종 증발해서, 나는 우리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믿어버렸던 것 같아.
그렇게 우리는 함부로 호들갑 떨며 거부하던 평범한 사랑의 속성-믿고 싶은 것만 주목하는 멍청함, 마음먹고 끊어냈다가도 공유하고 싶은 순간이 생겨 다시 연락하는 박약함, 닫힌 결말까지라도 일단 가보자고 제안하는 무모함-다 갖추고 만다.
이렇게 들으니 어때. 끝내도 되겠지. 당신은 반박에 뛰어난 사람이지만, 아무 말도 않을 것이다. 결국 나를 날아가게 둘 테니, 그 말만은 진짜로 이루어지겠구나. 어느 때고 순전한 진심이었지. 당신이나 나나, 그래서 문제라고.
그럼 이만, 줄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