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치료 중단 등 결정 이행서 (6): 항암제

by 남경훈

연명의료결정법상 임종기에 중단 가능한 연명치료 항목에는 항암제가 포함되어 있다. 항암제는 다양한 기전으로 암세포를 공격하여 암 환자의 생명 연장에 기여하는 치료제이다. 주로 수술 후 남은 암세포를 제거하거나, 수술 전 암의 크기를 줄여 수술이 가능하도록 만들고,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해 다시 사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항암제는 암의 완치를 목표로 사용된다. 한편, 수술이 불가능한 암이나 몸의 다른 부위로 전이된 암 환자에게도 항암제가 사용된다. 이 경우는 암의 완치가 아닌, 증상 완화나 생명 연장을 위한 목적으로 쓰인다.


항암제는 분명 암 환자의 생명 연장에 기여하는 약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만큼 많은 부작용을 수반하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 항암제는 암세포의 분열 과정에 작용하여 스스로 괴사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세포독성 항암제라고 부르며, 이러한 항암제는 부작용 또한 심하였다. 이는 암세포뿐만 아니라 정상세포와 면역세포에도 영향을 주었기 때문인데, 특히 세포분열이 빠른 정상세포들이 함께 손상되면서, 탈모(모발세포), 구역·구토(장세포), 면역력 저하(면역세포) 등의 부작용이 흔하게 나타났다.


비교적 최근에 개발되어 널리 쓰이고 있는 표적 항암제, 면역항암제라고 부르는 항암제는 보다 정밀하게 암세포만을 공격한다. 이들은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활용해 암세포만을 선택적으로 공격하기 때문에 기존 세포독성 항암제보다 부작용이 적다. 하지만 여전히 면역 반응 이상으로 인한 피부염, 장염, 폐렴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세포독성 항암제만 사용되던 시절, 전이성 암을 가진 말기 암 환자에게 의사들은 대개 기대 여명을 약 6개월 정도로 설명했다. 하지만 표적항암제와 면역항암제가 등장하면서, 일부 환자들은 중간 중간 발생하는 문제 (가벼운 감염증이나 부작용)를 해결해가며 4~5년 이상 생존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부작용이 줄었다고 하여도 항암제가 항상 환자에게 긍적적인 치료 효과를 보장하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환자의 건강 상태나 암의 진행 정도에 따라 항암 치료가 오히려 환자의 삶의 질을 저하시킬 수 있다. 특히 말기 암환자에서 항암제는 생명을 연장하는 대신, 그로 인한 부작용을 감내하거나 치료하느라 남은 여생을 고통스럽게 보낼 위험도 있다.


중환자실 의사로서 나는 수많은 말기 암 환자들이 생의 마지막을 중환자실에서 맞이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일부 환자들은 입실 직전까지도 비교적 일상적인 생활을 이어가다가 갑작스럽게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오기도 하고, 어떤 환자들은 항암 치료로 체력이 점차 저하되며 삶의 질이 떨어지다 임종을 앞두고 중환자실에 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대부분의 환자와 그 가족들이 중환자실 입원과 임종기의 시작을 너무도 갑작스럽게 느낀다는 것이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죽음이 다가올 줄 몰랐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은, 생을 정리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표적항암제나 면역항암제로 몇 년씩 생존이 가능해지면서, 말기 암 환자에게 곧바로 삶을 정리하라는 말을 꺼내는 것이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그러나 아무리 의학이 발전했다 해도, 완치가 불가능한 암 환자는 언젠가는 임종을 맞게 된다. 그리고 그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 결정하는 일은 전적으로 환자의 몫이다.


완치가 어려운 상황이거나, 이미 임종기에 접어든 암 환자에게는 항암제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환자와 가족이 이를 깊이 이해하고 숙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후 항암제를 시작할지, 계속 유지할지, 아니면 중단하고 완화의료(호스피스) 중심으로 전환할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진료 문화에서는 암 진단 초기부터 항암제 중단이나 완화의료를 제안하는 경우가 드물다. 내가 만난 환자들 중에는 본인이나 가족이 암이 완치 불가능한 상태임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죽음을 앞두고 그러한 이야기를 처음 들어봤다는 환자들도 많이 있다.


항암제는 생명 연장의 가능성을 제공하지만, 만약 그 치료가 환자의 삶의 질을 심각하게 저하시킨다면, 그 치료가 과연 환자의 존엄을 지키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다행히 이제는 연명의료결정법을 통해, 항암제를 포함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치료의 방향성이 단순한 ‘생명 연장’에만 머물지 않고 ‘삶의 질 유지’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환자 본인의 가치관과 우선순위가 존중 받도록 우리의 의료 문화가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항암제를 중단한다는 결정은 임종을 앞당길 수도 있지만, 그 남은 시간을 자신의 방식으로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한 ‘주체적인 선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종종 무조건 오래 살게 해주는 치료가 좋은 치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남은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보다, 그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아닐까. 항암제는 때로는 희망의 약물이지만, 때로는 너무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다. 만약 항암제 때문에 남은 삶이 고통으로 가득 차게 된다면, 그 치료를 계속할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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