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매회 장기자랑을 하면 상을 휩쓸던 S는 남다른 연기 재능을 발견하고는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남들과 다른 것이 연기 재능 말고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알았다. 변성기가 오지 않았다는 것, 아니 변성기가 왔으나 아이 같은 미성은 더욱 뚜렷해졌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와도 이는 변하지 않았다.
영화 “꿈을 잊은 그대”의 배우 캐스팅 공개 오디션에 지원하기 위해 S는 자주 찾는 사진관에서 다시 촬영을 하며 전신, 상반신, 얼굴 클로즈업 사진 1장씩을 첨부하여 해당 영화사에 지원서 메일을 보냈다. 수천 대 1일지도 모를 막연한 오디션에 1차 서류 전형에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은 S는 자신의 기량을 모두 보여줄 실기 오디션에 총력을 기울였다. 실기 오디션은 대부분 자유연기와 지정 연기로 연이어서 치러지기에 자유연기에 자신이 보여줄 연기 스토리를 구성하는 데 힘을 쏟았다. 대기실에서 받은 지정 연기 대본을 꼼꼼히 훑어보며 감정을 실을 곳의 대사에 열심히 동그라미를 치며 대본을 달달 외웠다.
진행요원을 따라 대기실을 나온 S는 감독과 심사위원들이 있는 오디션장 문을 열고 들어가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남다른 준수한 외모에 감독과 심사위원의 눈과 자세가 S에게로 쏠렸다. 지정 연기를 먼저 감독이 주문했다. S는 자신이 대기실에서 외운 대사에 감정을 실어 연기했다. 대사도 안 틀리고 감정도 제대로 실었다.
S는 감독을 슬쩍 쳐다봤는데, 뭔가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고, 심사위원들도 자신들끼리 의견을 나누느라 분주했다. 그러고는 자유연기 차례가 되었는데, 감독이 자유연기가 아닌 다른 주문을 했다. 노래, 춤, 성대모사까지 그 이전 오디션 참가자들과는 다른 주문을 했다. S는 감독의 주문을 모두 소화하고는 오디션장의 문을 열고 나오는데 휘청했다.
스물아홉 번의 오디션을 보면서 이렇게 탈진한 경우는 S에게도 드문 일이었다. 지정 연기도 완벽했고, 열심히 구성한 자유연기는 할 기회가 없었지만, 노래, 춤, 성대모사까지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어서 S에게는 미련 없는 오디션이었다. 공개 오디션으로 치러진 만큼 일주일 이내에 홈페이지 공지와 개별 연락을 할 것이라고 진행요원이 홈페이지에 있던 합격자 발표 사항을 다시금 알려주었다.
3일 정도 지났을 때 S는 자신이 다시금 고배를 마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물여덟 번의 오디션, 아니 이제 스물아홉 번의 오디션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이랄까...... 이미 오디션 합격자에게는 그날이나 그 다음날 연락이 갔을 것이고 홈페이지에만 일주일 뒤에 발표한다는 것을...... S의 재주와 끼는 나무랄 데가 없었지만 치명적 단점에 심사위원의 눈을 이번에도 넘지 못했다. S가 어릴 때는 몰랐으나 선천적으로 혀가 짧아서 시옷과 기역 발음을 할 때 아이들처럼 혀 짧은 소리가 나왔다. 초등학교 때는 이게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배우가 꿈인 S에게는 감정을 실은 대사 전달에는 크나큰 치명적 단점이었다.
스물아홉 번째 오디션을 치르는 동안 S는 대학로의 한 허름한 연극 무대를 두간하게 찾아왔다. 범도 새끼 둔 골을 두남둔다고 했던가? S가 10살 되던 해에 부모님과 함께 온 이 대학로 연극 무대가 S에게는 애착이 가는 곳이었다.
생일이었던 그날, 부모님과 연극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있었고 어머니가 사고 순간 자신의 몸으로 S를 감싸서 다리에 찰과상 외에는 다친 곳이 없었다. 부모님과 가장 따스하게 보낸 그날이 그리워질 때면 이곳을 찾게 되었다. 배우가 되겠다는 S의 다짐도 부모님과 보낸 그 시간을 재연하려는 것이었지만, 수년째 고배의 잔을 들이켤 때면 배우의 길을 두덮고 싶었다. 그렇게 S는 오디션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했으나 결과는 이전 오디션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