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의 연속 최저 시청률로 국장의 심기는 한없이 흔들렸다. 마지막 선보인 프로그램은 최고의 내로라하는 연예인들로 PD는 그들이 놀 자리만 만들어주기만 하면 빵빵 시청률이 최고치를 경신할 것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처음에는 예상대로 시청률의 중타 이상을 쳤지만, 출연자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하다 보니 골이 깊어져 저 출연자가 출연하면 안 나오겠다는 식이 되어 버렸다. 결국 예정되었던 횟수를 다 채우지도 못한 채 조기종영을 해야만 했다.
박 PD는 K방송 공개채용 때 1등으로 들어와 이목이 집중되었지만, 번번이 최저 시청률에 조기종영으로 프로그램이 폐지가 되니 국장은 박 PD를 빛 좋은 개살구의 준말로 ‘빛개’라 불렀다. 국장의 인신모독적 발언도 귀에 들어오지 않은 것은 자신도 자신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하는 데도 이상하게 다른 쪽으로 흘러가 거미줄에 걸린 파리처럼 조기종영의 길로 떨어지는 것에 화가 더 치밀었기 때문이었다.
자신과 같이 들어온 동기들이나 한참 어린 후배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자신만 바닷가 게처럼 옆으로 가거나 아니면 뭐에 놀란 소처럼 뒷걸음질 치고 있으니 자꾸 술이 부르는 날이 많아졌다. 술을 과하게 마셨는지 술이 깨지 않던 날, 야심 차게 준비하고 있던 좋은 기획안으로 국장실을 찾은 박 PD는 국장의 태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박 PD, 참 기획안 좋네. 그런데, 이거 송 PD에게 넘기는 것 어때? 또 말아먹지 않으려면...”
화를 내야 하는 게 맞는데, 박 PD는 기획안을 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씁쓸했다. 아니, 아주 저 밑에서 어제 먹은 술의 신물이 올라왔다. 프로그램 연속 조기종영의 참패를 맛본 박 PD는 자신보다 한참 어린 후배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고 자신이 프로그램을 기획하던 사무실도 비어 주어야 했다.
입사 초 조연출을 맡아서 한 프로그램이 연속 대박을 쳤기에 PD로 급승진했고 남들보다 빨리 자신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자리까지 왔지만, 이제는 어느 프로그램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밤낮 가리지 않고 프로그램 일에만 몰두했기에 친구나 지인도 자신에게 줄을 대려는 연예인 매니저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퇴사 수순을 밟아야 하나 고민을 하며 머리를 식힐 겸 대학로를 찾았다. 대학로에 오니 자신의 20대 열정이 가득했던 청년 박 PD가 대학로 곳곳의 환영처럼 건물의 이미지와 겹쳐지기 시작했다. 한 건물 2층 테라스에서 자신의 미래를 꿈꾸며 열변을 토하는 청년의 모습이 스치다가 인형탈을 쓰고 전단지를 돌리고 있는 현재의 아르바이트생과 몸이 부딪혔다. 둘 다 뒤로 꼬꾸라지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말없이 인형탈을 쓴 청년은 벌떡 일어나 박 PD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전단지 한 장을 건내고는 인형탈 아르바이트생은 사라졌다. 박 PD는 몇 안 남은 지인이 대학로에서 연극만을 고집하며 자신의 사비를 털어가며 운영하고 있는 소극장으로 찾아갔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