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이는 처음부터 어린아이들을 공략으로 삼은 게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동화같이 대상층이 어른들을 위한 캐릭터였다. 웅이의 유튜브 영상들은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 개설해서 첫 영상이 등록된 이후 구독자 1만 명을 하루 만에 가뿐히 넘겼고, 10만 명은 단 3일 만에 넘겼다. 무명배우의 S의 재주는 노래, 춤, 말재주뿐만 아니라 영어, 스페인어까지 가능했기에 전 세계적으로 스타가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웅이의 인기는 유튜브를 통해 한국을 넘어 외국에까지 퍼졌고, 케이블 TV는 물론 공중파에서도 웅이의 섭외에 열을 올렸다.
웅이 캐릭터는 여러 상품과 콜라보를 진행하며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앞다퉈 사들였다. 그들의 열광은 웅이의 변함없는 열정의 양분이 되었다. 웅이의 필살기는 잘 모르는 것이 있을 때는 고개를 왼쪽 갸웃 오른쪽 갸웃거리는 행동이었다. 웅이의 얼굴은 가만히 있어도 약간 물음표를 가져다주는 얼굴이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면 사람들은 빵빵 웃음이 터졌다. 대학 시절 X세대를 표방했던 이들이 40대가 넘어가면서 사회의 부조리나 왜 하는지도 모르는 관행과 관례에 의문을 품었던 이들에게 웅이는 그들의 생각을 투영할 아주 좋은 캐릭터였다. 20대는 취업에 대한 절망과 나락에서 자신감 넘치는 웅이를 바라보며 힘을 얻고, 10대는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2개 방송사의 개그 프로그램이 없어지고 1개 방송사의 개그 프로그램도 4% 저조한 시청률로 언제든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TV 프로그램 없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웅이의 몸짓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 10대에게는 스트레스 해소를 할 수 있는 돌파구로 자리 잡았다.
장마 때 여기저기서 흘러들어 소쿠라진 물이 개천을 넘실넘실 범람할 듯 말 듯하는 것처럼 웅이를 찾는 곳이 TV와 라디오를 넘나들며 쇄도하기 시작했다. 작년 이맘때 S는 소슬한 겨울 문턱의 바람을 온몸으로 스치며 낙방의 설움을 이겨내야 했는데, 해소수가 지난 지금의 S는 많은 곳에서 많은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웅이라는 친구 덕에 S의 단점이었던 혀 짧은 소리를 마음껏 내도 도망가는 사람이 있기는커녕 오히려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S의 마음은 한껏 따스해졌다.
박 PD가 퇴사 후 유튜브에 개설한 웅이TV방송국의 영상들의 조회수가 고공행진할수록 박 PD의 대우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K방송국 국장의 고자세 목소리는 나긋나긋해져서 PD 다음에 님을 붙이며 살랑이듯 얘기를 하며 다시 PD로 영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K방송국 직원들은 커져가는 웅이TV방송국 밑으로 들어가기 위한 줄타기를 하는가 하면 PD로 일할 때 같이 일하고 싶은 연예인 목록의 1페이지에 있는 유명 연예인부터 저 어디쯤엔가 있을 이름도 모를 연예인들까지 웅이와 실시간 검색어에 조금이라도 연관되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다. 박 PD의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조금씩 초심을 잃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S의 의견과 상충되지 않았으나 더 시청률을 뽑고자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S에게 강요하는가 하면 말도 더 버릇없이 막말을 하도록 종용했고, 무리한 스케줄로 박 PD와의 잦은 마찰로 사이가 점점 버그러지기 시작했다.
S는 하루 종일 이 스케줄 저 스케줄을 무거운 웅이를 뒤집어쓰고 종종거리며 소화를 했더니 다리가 붓고 온몸에 짠내가 날 정도로 땀범벅이 되었다. 지하창고나 다름없는 허름한 어두컴컴한 소품실에서 웅이를 벗어 한쪽에 세워두었다. 조명 빛에 비친 거대한 웅이의 두루뭉술한 그림자가 본연의 섬세한 선을 가진 사람 그림자가 되었다. 소품들 사이에 자신이 벗어놓은 실시간 검색어 1위의 웅이가 무명배우 S에게 무언의 대화를 건넸다. S의 마음이 수천수만 가지로 갈라지더니 이내 마음이 갈라진 마음만큼 무거워졌다. 그러고 나니 S의 마음에 웅이의 인기에 가려 미처 자각하지 못한 자아가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안쫑잡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