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이가 나인가 아니면 내가 웅이인가?’
며칠 전부터 S는 웅이를 소품실에 벗어 서랍장 세 번째 칸에 넣어둘 때면 S는 웅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정작 웅이를 뒤집어쓰고 있는 S는 웅이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쓸 때와 벗을 때였다. 할 말 다 해주고 따스한 말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긍정의 아이콘 웅이가 S 자신에게도 그렇게 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웅이의 내면에서 빠져나온 S는 S의 내면의 자아가 이탈한 것처럼 텅 비어 어떤 말도 돌아오지 않았다. 웅이를 연기하면서 모든 이들의 아픔에 긍정을 불어넣던 S는 정작 자신의 아픔은 돌보지 못한 채 마음 한 구석에서 아픔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웅이가 가져다준 인기는 S가 아닌 웅이에게만 머무는 것에 S자신도 질투가 났었을 수도 있었다. 벗어놓은 웅이를 쓰다듬으며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눈을 감았다. 뭔가 결심이 섰는지 S는 눈을 뜨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웅이의 스타일대로 S는 마지막 스케줄을 마치고 박 PD를 찾았다. S는 자신의 고민과 고뇌를 박 PD에게 담담히 털어놓으려 했지만, 박 PD는 이미 예전의 모습과는 다른 유체스러운 말로 S의 행동에 나무라기 시작했다. 심지어 웅이의 깜찍한 포즈와 팬들이 ‘웅이둥절’이라고 부르는 고개를 갸웃갸웃하는 행동까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음 스케줄부터 그 행동을 하지 말라고 했다.
S의 고민과 고뇌는 머릿속에 맴돌다 곪아 터져 결국 박 PD와 으드등거리며 말다툼이 오갔고 으깍이 난 두 사람은 물과 기름처럼 위아랫물졌다. S는 더 이상 웅이를 쓸 힘도 쓰고 싶은 의지도 남아 있지 않게 되어버렸다. S는 웅이를 벗어두고는 다음 스케줄과 상관없이 대기실에서 나와 차를 몰고 거리로 나왔다. 밤새 내리던 눈은 산도 들도 나무도 사람들의 일상을 가둔 빌딩 위에도 소복이 쌓일 정도가 되어서야 머츰했다.
박 PD는 웅이TV방송국이 잘되어간다고 해도 기존에 있던 지상파 방송국과 케이블 방송국의 어마어마한 스폰서의 재력은 웅이TV방송국으로 흘러들어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웅이를 섭외 전화는 많이 와도 웅이TV방송국을 지원하려는 스폰서의 접촉은 전무했다. 웅이를 통해 K방송국 국장에게 인정을 받고 방송국에서 잘 나가는 PD로 돌아가서 입지를 다지려고 했다. 그래서 박 PD는 국장을 만나 단판을 지으려 했다.
K방송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만든 웅이가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은 웅이를 연기한 S가 아닌 웅이가 잘나가도록 연출한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국장은 다르게 생각했다. 웅이가 없는 박 PD는 필요 없다며, 웅이TV방송을 K방송의 한 프로그램으로 고정해주겠다고 했다. 돌부리에 찍혀 발가락에 생긴 먹피는 앙금처럼 오랜 시간이 지나야 제 발톱이 나오듯 자신의 생각과 다른 국장 때문에 심기가 어지러운 상태에서 S와의 갈등이 벌어지자 S를 설득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