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숨소설] 버림치 01. 악몽

따숨소설 01

by 연이

태풍이 올라오면서 장마전선을 북쪽으로 끌어올렸다. 서서히 물러가려던 장마전선은 태풍의 습기를 머금고 원동력 삼아 억수장마는 연일 기록을 갈아치우며 모든 땅을 물로 덮으려 쏟아붓고 있다. 태풍이 아니었다면 장마전선은 남쪽으로 완전히 내려가 폭염의 맹위를 떨칠 날들이었지만, 가로등이 켜져 있지 않은 한적한 외곽도 아닌 도시에 아침이 되어도 어둑발이 완전히 깔리었다.


어둠과 어둠 사이의 빛을 뚫고 비리비리할 정도로 가냘픈 새까만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걸음새가 어뜩바뜩하고 고르지 못한 인도에 쇠사슬이 닿으면서 나는 날카로운 마찰음과 뭔가가 끌리는 듯한 소리와 더불어 보도블록을 찍으면서 생기는 나무 막대기의 텅텅거리는 소리가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서아는 이번만큼은 자신을 괴롭히던 정체를 보려고 뼈물고 있었다. 나름의 규칙적인 소리가 점점 템포가 빨라지더니 이내 자신의 눈앞으로 빠르게 돌진해오는 그림자가 보였다. 서아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얼굴로 가져가 덮었다. 템포가 빨라졌던 소리도 이내 고요해졌다. 살짝 손을 치워 눈을 떴더니 그림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하얀 안개가 서아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으면 검정색이 펼쳐지는 것과는 달리 눈을 뜨고 있는데, 하얀색이 차가운 기운이 서아의 몸을 얼리고 있었다.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손발을 빠르작거리며 헤쳐나가려다 서아의 뒤에 뭔가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차가움의 더 차가움이랄까 기분 나쁜 차가움이라고 하는 게 더 맞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서아의 머리는 통째로 잡혀 뭔가에 끌려가고 있었다. 서아의 비명은 가위에 눌린 육체를 뚫고 현실의 입 밖으로 퍼졌다.




어마지두에 놀라 눈을 뜬 서아는 꿈속에서 머리카락을 잡혀 끌려가면서 느끼던 고통을 줄이려 두 손을 머리 쪽으로 올린 상태로 깨어났다. 얼마나 발버둥 치며 손을 꽉 쥐었는지 손바닥은 벌겋게 되었고,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에 베개가 온통 다 젖은 땀벌창이 되어 있었다. 그 차가운 촉감과 자신의 머리채를 잡고 끌려갈 때의 통증이 아직도 남아있는지 서아는 몸을 둥글게 말아 옹송그리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병이 들거나 벌레가 판 자리에는 불퉁하게 결이 맺히어 자라는 옹두리처럼 서아의 마음에도 또 하나의 옹두리가 자라버렸다.


처음 이 꿈을 꿨을 때는 음산한 분위기에 형태가 없는 추상적인 악몽이었는데, 꿈의 형태가 점점 구체적이고 상세해지는 것과 더불어 서아 자신도 꿈을 꾸고 있는 것을 아는데도 깨어나지 않았다는 데에 뭔가 꿈이 진화하는 느낌이고 이런 꿈을 꾸고 난 날은 몸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아졌다.


서아는 샤워를 하면 좀 몸이 개운할까 하고 침대에 걸터앉았다가 일어나려는데 방 주위가 빙글빙글 돌더니 희끗거려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서아는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땀범벅이 되어 끈적끈적해진 몸을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이를 닦으려 칫솔을 들려는 순간 세면대 앞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자신이 봐도 퀭하고 초췌해 보였다. 몇 년 전 서아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눈에 가장 행복했던 때를 갈구하는 듯 그때의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따숨소설] 버림치 02. 의문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