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 띠~ 띠~ 띠~
환자감시장치의 짧은 음, 산소호흡기의 보글거리는 소리, 링거액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서서히 수한은 눈을 떴다. 천정의 하얀색 블록, 소독약 냄새. 아직 살아있음을 안 수한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중환자실이 아닌 일반 병실로 옮겨진 것을 보고는 손목에 꽂혀 있던 링거 핀을 빼고는 옷장에서 자신의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 보호자가 수한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꼈는지 간호사를 부르기 시작했다. 간호사는 수한에게 좀 더 있어야 한다고 말렸다. 이 소란은 금세 담당 의사에게까지 전달이 되었는지 다급하게 달려왔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옷을 다 입은 수한은 접수대에서 계산을 마치고 다급히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따고 들어온 수한은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상자 서너 개를 열어보더니 한 상자를 거실로 가지고 나왔다. 거기에는 자신이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소중한 보물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상자를 뒤집어 모두 쏟았다. 우주비행선 장난감, 수첩, 죔죔 볼, 큐브 등 어릴 적 생각이 새록새록 생각나는 물건들이었다.
그리고 커다란 공. 커다란 공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시 상자에 담아서 거실 한 쪽으로 밀어 넣고는 커다란 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양쪽 버튼을 동시에 누르니 열리면서 두 조각이 나눠졌다. 위쪽의 뚜껑은 아래쪽으로 내려놓고 아래쪽 반쪽 원 안에는 들은 물건을 바라봤다. 열쇠랑 접힌 종이가 있었다.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이 열쇠랑 종이를 이곳에 넣은 기억은 나지 않았다.
소중한 물건을 담으라고 준 이 공 모양 보관함은 사실 가지고만 있었지 여기에 뭘 넣은 적이 없었다. 소중하다고 생각한 물건이 있기 전까지는 열고 싶지 않았다. 몇 번 접어진 종이를 풀어서 쫙 폈다. 노트를 찢어서 삐뚤빼뚤 수식을 쓰고 그림을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 아빠의 글씨체는 아니었다. 난제의 단계적 막힘이 있을 때마다 자신에게 해결책을 써준 그 글씨체였다. 수한은 열쇠랑 노트 조각을 들고는 한참을 생각했다.
꿈, 서재, 그리고 커다란 눈. 커다란 눈을 피해 수한은 매번 도망을 갔다. 꿈의 처음은 항상 서재였다. 아버지의 서재이자 내 서재였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책을 아작 씹어먹는 장면이 꿈의 첫 장면이었다. 항상 같은 책. 맞았다. 수한은 서재로 가서 커다란 눈이 먹고 있던 책이 있던 위치에 섰다.
책은 비어 있었다.
진짜 그 커다란 눈이 먹기라도 한 것처럼. 암막 커튼으로 가려진 서재의 서가를 보니 딱 거기만 검은색으로 칠해놓은 것처럼 까만 빈칸이 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암막 커튼을 조금씩 밀어서 접었다. 서가의 까만 빈칸이던 뒷부분이 보였다. 뭔가 다른 게 뒤쪽으로 밀려있었다. 서가에서 몇 권의 책을 꺼내 다른 책 위에 얹어놓고는 뒤쪽으로 밀려 있는 것을 집어내려고 했다.
살살 꺼내려고 했는데 서가의 뒤쪽 공간으로 툭 떨어졌다. 맨 아래 서가의 책을 모두 꺼내도 원체 컸던 것이라 서가에서 꺼내기는 무리였다. 서가를 밀어보려 해도 책이 너무 많아 움직여지지 않았다. 한참을 실랑이를 했더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힘들어서 털썩 주저앉아서 서가를 보니 애초에 움직이기 되어 있지 않았을지도 몰랐다.